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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신중현 "音이 공간을 아우르는 경지 이르고 싶었다"

50년 음악 여정 앨범 '앤솔로지' 발표<br>70년대 일본서 거액 주며 귀화 제의했지만<br>그땐 내콧대가 높아서 우습게 생각했어<br>먼저 인간이 돼야 음악도 되는거야<br>기교나 부린다고 되는게 아니지…



신중현 "音이 공간을 아우르는 경지 이르고 싶었다" [리빙 앤 조이] 50년 음악 여정 앨범 '앤솔로지' 발표70년대 일본서 거액 주며 귀화 제의했지만그땐 내콧대가 높아서 우습게 생각했어먼저 인간이 돼야 음악도 되는거야기교나 부린다고 되는게 아니지… 우현석기자 hnskwoo@sed.co.kr 신중현이라는 이름 석자는 한국 대중 음악사에서 트롯 일색의 근대 음악과 록으로 대변되는 현대음악의 경계선이다. 그는 미 8군에서 연주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록 음악으로 이 땅에 현대 음악의 씨를 뿌렸고, 결과물로 지난 1월 29일 그의 50년 음악 외길을 집대성한 음반이 발매 됐다. 앨범의 타이틀은 ‘신중현 앤솔로지 파트 Ⅰ, Ⅱ 1958~2006’. ‘빗속의 여인’ ‘님아’ ‘봄비’ 등 일세를 풍미했던 히트 곡들이 수록된 10장의 앨범이다. 앨범이 발매되는 것과 동시에 신중현 측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 왔다. 록 음악에 문외한인 기자는 짜임새 있는 기사를 만들어 낼 욕심으로 평소 알고 지내던 엄덕영 꼬레뮤직 대표를 앞세워 경기도 양지 스키장 인근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인사를 나누면서 살펴 본 그의 모습은 하얗게 센 머리만 제외하면 전성기 시절 그대로였고, 기자 일행을 대하는 태도는 연륜 만큼 진중했다. -엄덕영(이하 엄):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선생님께서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 스승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 어이구, 반갑습니다. 특별히 선생님이라고 할 분은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동요부터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무 통에 줄을 걸어서 악기 비슷하게 만들어 가지고 연주를 했지요. 학교에 풍금이 있었지만 그 때는 선생님이나 만질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어요. 내가 만든 악기는 현악기이라서 자연스레 기타를 하게 된게 아닌가 싶어요. 톰보ㆍ버터플라이라는 하모니카도 있었는데 하도 불었더니 고장이 날 정도였어요. 기타를 처음 만진 건 중 2때 였는데 악기점에 바이올린이 하나 걸려 있길레 사가지고 와서 혼자 연주를 하다가 소리가 제대로 안 나서 다락에 처 박아 놨어요. 한 일년 지나서 다른 악기로 바꾸려고 악기상으로 가지고 나갔는데 기타가 하나 있어서 바꿔달라고 했더니 바이올린이 비쌌는지 얼른 바꿔주더라고. 악기상 주인이 악보를 공짜로 줘서 그걸 가지고 공부했어요. -엄: 그러면 샘플이 됐던 음악은 있었나요. ▦미군방송에 ‘베거본’이라는 프로가 있었어요. 그걸 들으려고 영등포시장에 가서 광석을 사고, 구리선을 달아서 라디오를 만들었어요. 리시버를 사다가 머리에 끼고 AFKN을 들었지. 24시간 음악 방송을 했는데, 그걸 들으면서 음악에 눈을 떴어요. 그 때 맘보, 룸바를 매일 들었어요. 음악들이 진짜 좋더라고. 일하면서 틈만 나면 음악을 들었어요. 밥도 잽싸게 먹어치우고, 기타에 매달렸었지. -엄: 신중현 하면 금지곡이 먼저 떠오릅니다. 금지곡들이 풀릴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 75년에 금지돼서 80년에 풀렸어요. 74년 말에 대마초로 잡혀 들어갔으니 사실상 그 때부터 금지된 거라고 봐야지요. 그땐 너무 힘들어서 실감이 안 났어요. ‘아름다운 강산’은 원래 72년에 만들었던 건대 리메이크를 해서 80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엄: 김삿갓(국악을 록에 접목한 앨범), 기타산조 등 록을 국악에 접목을 했는데 국악에 매력을 느끼셨나 봐요. 엄덕영 대표는 서양음악은 물론 국악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어, 휘하에 여러 명의 젊은 국악인 데리고 있는 아티스트다. 그가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것 같았다. ▦70년 전후로 록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어요. 록 문화에 우리 문화를 얹어서 대중음악을 하게 된 거예요. 여러 가지 음악을 하다 보니 90년대 기타 산조와 김삿갓을 하게 됐지. 한국적인 음악을 세계화 시키겠다는 시도를 한거지요. -엄: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 음악도 세계화 할 수 있을까요.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 돼요. 록이라는 사운드는 전자음을 수용하면서 기타를 위주로 리드 할 수 있어서 세계적인 음악이 된 거예요. 소규모로 멤버를 쉽게 결성해서 자유롭고 융통성이 있는 음악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 세계화를 이룬 요인이지요. -엄: 혹시 홍대 앞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밴드가 홍대 앞에 만 800개가 있습니다. 낮에는 음식 배달을 하고, 밤에는 음악을 하면서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한마디 해주시죠. ▦소리가 나면 다 음악이 됩니다. 그렇지만 대중 음악인이라면 대중 문화를 끌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지나치게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그것도 좋지만 대중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해요. 나는 적어도 내 음악이 대중에 미칠 영향과 그들의 생각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를 생각했어요. 대중 옆에 있으면서 자기 음악을 알린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는 거지요. 무조건 자기 멋에 음악을 한다면 그게 얼마나 가겠습니까. 베토벤도 형식이 있고, 룰이 있었습니다. 그 형식 위에서 자기를 알린 거지요. 젊음을 이해는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서 현명한 방법으로 음악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사에 욕을 넣거나 하는건 대중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거예요. 그런 것은 결코 전위가 아닙니다. 전위라는 것은 더 높은 수준의 음악을 지향한다는 의미 입니다.. -엄: 아들 신대철씨에게 음악을 대물림 하셨는데 후회는 안 하십니까. ▦후회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음악을 하는 여건이 좋지 않아요. 문화 정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보호를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잠재력 있는 젊은이들을 하나의 자산으로 생각하고 육성해야지요. 지금 처럼 규제만 한다면 희망이 없어요. ‘정책 입안자들이 현대 음악이 뭐라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 같은 토양에서는 수준 높은 음악을 기대할 수 없어요. 음악은 예술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겁니다. 예술성이 없는 음악은 싸구려 문화일 뿐이예요. 창의성 있는 음악이 생산될 때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거 라고 생각합니다. -우현석(이하 우): 일본에서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신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절한 이유는 뭔가요. ▦70년에 그 제의를 받았어요. 거절한 이유는 그 때가 음악활동을 가장 왕성하게 하던 시절이어서 일본음악이 우스워 보였어요. 당시만 해도 대만 사람들이 ‘봄비’에 미쳐서 우리나라까지 찾아와서 나를 따라다녔어요. 저는 그 때 음악 수준이 지금의 국제수준에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일본에서도 내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일본에서도 돈이 된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땐 내 콧대가 높았는데 일본쪽에서는 귀화하고 이름까지 바꾸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 신중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가면 몰라도 귀화해서는 못하겠다고. -엄: 그러면 돈은 많이 벌었습니까. ▦돈 버는 사람들은 따로 있지. 나는 음악이 좋아서 하는거고. -엄: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겠지만 그래도 지난 50년 동안 만드신 음악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음악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미인' 이나 ‘아름다운 강산' 도 좋고, 그 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은밀히' 아끼는 곡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작곡한 게 500곡이 넘는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곡은 어쩔 수 없이 애정이 가는 편이에요. -엄: 신중현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곡은 어떤 곡인가요. ▦아무래도 펄 시스터즈의 ‘님아’라고 봐야지요. 음악에 대한 그의 철학에 대해 들어 봤으니, 이제 세상을 바라 보는 그의 눈매를 살펴 보고 싶어졌다. -우: 얼마 전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당선자께서 ‘규제를 없애겠다’고 하셨다는데 음악계의 규제도 없애달라고 하고 싶어요. -음악계에도 규제가 많은가요. ▦그럼요. 이를테면 음악인들은 아무 요식업소에나 음악을 연주할 수 없고, 1종 업소에서만 연주를 할 수 있어요. 그런 규제는 정말 오래 지속되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 같은 음악가들은 연주할 권리가 있고, 대중은 들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규제해 못 듣게 한다면 무슨 문화가 싹틀 수 있겠어요. 대통령이 그런 규제를 풀어주고 말고를 떠나서 그런 규제가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고 싶어요. -우: 그밖에 음악계에서 반드시 철폐해야 할 악습이 또 있나요. ▦그룹이라고 하면 퇴폐를 먼저 생각하는 선입견이 지워지지 않는 것도 섭섭해요. 그러니 음악 하는 애들이 기가 죽어 있고, 홍대 앞에서 욕이나 하고 있지. 음악 하는 애들은 대개 천성이 착하고 내성적이에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손가락 질을 하니 내놓고 ‘음악 한다’고 하지 못해요. 내가 8군에서 음악 할 때는 미군들이 기타를 들어서 날라 줄 정도였어요. 지금의 편견이 서러워요. -엄: 후배 뮤지션의 음악도 즐겨 들으세요? 선생님이 인정하는 후배 가수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디 한 둘인가. 재능 있는 애들이 다 자산인데…. -엄: 인터넷 음악방송(www.sjhmvd.com)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컨셉트의 프로그램인가요. ▦아직 개국은 하지 않았고 여기서 시작해 보려고 작업을 하고 있어요. -우: 평소에 음악이 살아 남기 위해선 그 본질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는데, 그 '본질'이란 게 과연 뭔가요. ▦인간이 돼야 음악도 되는 거예요. 교만하거나,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 심리 상태로는 때 묻은 음악이 나올 수 밖에 없어요. 기교나 부린다고 해서 모두 음악은 아니지. 어려운 얘기예요. -우: '아직 풀지 못한 음악적 숙제'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건 또 뭔가요. ▦지금까지 나온 음악이 전부라고 하면 음악은 끝난 거예요. 아직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요. 젊은 친구들이 현대 음악을 한다고 하지만 평면적인 음악이 많아요. 그게 전부라고 하면 음악은 없는 거예요. 나는 입체적인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음(音) 하나가 깊이를 줘서 공간을 만드는 음악 말이에요. 우주 공간을 아우를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은거예요. 그런 차원의 음악을 할 때 진정한 음악이 나오는 거라고 건방진 소리를 하는 거예요. 요새는 은퇴해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까 이렇게 막 말을 하는거지. -엄: 찾아오는 후배는 있나요. ▦은퇴해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을 누가 찾아와. 만나면 술이나 먹게 되지. 이제 술도 끊었는데…. ◇약력 ▦62 그룹 '애드포' 활동 ▦72 그룹 '더 맨' 활동 ▦73 '신중현과 엽전들' 결성 ▦80 '신중현과 뮤직파워' 결성 ▦83 '신중현과 세 나그네' 멤버 ▦87 공연장 'Wood Stock' 운영 ▦89 에버랜드 팝스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97. 01 ~ 98. 08 수원여대 생활음악과 전임강사 ▦2005 MBC 방송연예대상 대중음악부문 특별상 ▦2006 KBS 가요대축제 공로상 ▦2006 제21회 골든디스크상 공로상 • 大화면 TV, 어떤게 좋을까? • 성능 UP! 가격은 DOWN! • 영상기기 용어 해설 • 신중현 인터뷰 • 스키장의 밤은 아름답다 • 스키 마니아는 2월에 탄다 • 태안반도, '순백의 희망' • 안면도 자연휴양림 • 안면도 게장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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