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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정회동 KB투자증권 사장

내 힘의 원천은 억척 DNA … 시골소년이 증권사 수장 됐죠



중학교때 홀로 서울 올라와 친척집 전전하며 학업 매진

대학시절엔 쉴틈 없이 과외… 등록금 내고 생활비도 보태

인덱스펀드 출시 2년 만에 2조 넘으며 강한 인상 남겨

직원과 CEO는 운명공동체… 조직에 억척스러움 심을것

정회동(57·사진) KB투자증권 사장의 고향은 충청북도 진천이다. 진천은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당초 서울 외곽에서 촬영을 하다가 서울의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시골 풍경을 찾기 힘들어지자 촬영지를 진천으로 옮겼다. 이 얘기만 들어도 진천이 얼마나 시골인지 상상이 간다.

시골 출신답게 정 사장은 스스로를 억척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정 사장이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는 절대 녹록하지 않은 세월이 있었고 그 힘든 세월을 이겨낸 것은 억척스러움이었다.

정 사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올라갈 결심을 했다.

"어렸지만 주변에 시골에서 농사 짓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진천에 계속 있다가는 저도 비슷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더 큰 세상에서 제 꿈을 실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를 서울에서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당시 성공의 상징인 판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정 사장은 그의 다짐대로 용산중·용산고를 거쳐 1980년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입학하며 판사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때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크게 기운 것이다.

정 사장은 법학도에서 경영학도로 진로를 바꿨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법고시 합격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다.

사시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시간과의 싸움이 중요한데 당시 정 사장은 집안 형편상 그 긴 시간을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정 사장은 결국 취업을 위해 경영학과를 지원했다.

그렇다고 마냥 편하게 학교만 다닐 수도 없었다. 학비와 집안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늘 세 개 이상의 과외를 했다. 돌아가면서 과외를 하다 보면 일주일에 10번 정도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다.

어린 나이에 홀로 서울에 올라와 친척집과 하숙집을 옮겨 다녔던 중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집안일까지 돌보면서 공부를 해야 했던 대학 시절까지. 억척스러움이 없었다면 결코 쉽게 헤쳐나올 수 없는 힘든 시기였다.

그는 자신의 이 억척 유전자가 KB투자증권 임직원들에게 전이되기를 바라고 있다.

"KB투자증권에 처음 왔을 때 직원들이 너무 얌전하고 바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KB투자증권은 소형사임에도 불구하고 억척스러운 느낌이 없습니다. 직원들이 사장을 본받아서 억척스러움을 가지고 강한 중소형사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직원들을 강하게 몰아붙인다는 얘기는 아니다. 정 사장은 사내에서 특히 젊은 직원들에게 인기가 높다. 평소에는 진중하고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직원들 앞에서는 한껏 자신을 내려놓고 수다쟁이가 된다. 자신을 어려워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함이다.

정 사장은 취임 후 지난 반년 동안 우리투자증권 인수 문제로 외부에는 말을 아꼈지만 내부적으로는 전 직원들과 산행·술자리 등을 마련해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결속력을 다졌다. 그런 정 사장에 직원들의 호감도는 상당히 높다.

정 사장은 중고등학교 시절 상당히 내성적이었다. 지금도 말수가 적고 진중한 성격이지만 대학교 때 경영학과를 선택한 후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공부하랴, 과외하랴 바쁜 와중에도 사람들을 사귀기 위해 노력했다. '벗들의 큰 뜻'이라는 의미의 우거지(友巨志)라는 클럽을 만들어 술도 마시고 놀러 다니면서 평생의 친구들을 만났다.

임태희 전 대통령비서실장, 장연철 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 등이 우거지 정식 멤버였으며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 원장도 이들과 자주 어울렸다. 이들은 지금도 일 년에 몇 차례씩 모임을 하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끈끈한 관계는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그 사람의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할 때 형성됩니다. 대학 시절부터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귀었습니다. 내가 남한테 해주면 남들도 자연스럽게 그만큼 해줍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준 기억밖에 없는데 지나고 보니 저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도 결국 남들이 다 도와준 겁니다."

사람과 술을 좋아한 덕분에 폭넓게 맺은 인간관계는 정 사장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큰 도움이 됐다.

1999년 LG투자신탁운용 상무로 있던 시절 정 사장은 뮤추얼펀드의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자 그 대안으로 인덱스펀드를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인덱스펀드는 크게 인기가 없던 시절이라 출시해도 시장에서 돈을 모으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정 사장은 과거 LG그룹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지인들을 총동원해 업계 최초로 인덱스펀드의 성공을 이끌었다. 최초 100억원으로 설정했던 인덱스펀드는 이후 씨티뱅크의 판매 라인업에 포함되면서 출시 2년 만에 2조원을 넘어섰다.



정 사장은 최고경영자(CEO)의 가장 중요한 자질에 대해 "조직 구성원들과 운명공동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팀장도 구성원과 함께라는 생각이 없으면 후배들을 끌고 갈 수 없다. CEO는 조직 구성원들과 같이 발전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이 어려울 때 정 사장의 이런 태도는 후배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 2004년 LG투자증권이 우리금융지주로 넘어갈 때였다.

당시 시장에서는 LG투자증권 부사장이던 그가 다시 LG그룹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정 사장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혼자만 구명보트를 타고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부하 직원들과 함께 난파선에 남았다.

정 사장의 이런 점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조직이 어려울 때도 함께 믿고 갈 수 있는 CEO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지금까지 정 사장이 위기에 처한 증권사들을 주로 맡아 후배들을 독려하며 위기를 잘 극복해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정 사장은 특히 증권사 CEO로서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 "증권사는 매월, 매년 0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업종의 CEO에 비해 더 창의적이어야 하고 직원들의 창의성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사장은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CEO가 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후계자를 만들어내는 CEO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조직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제 짧은 임기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꿈을 꾸고 그 여정을 같이 이어갈 수 있는 후배 CEO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잘 육성할 수 있는 CEO가 되는 게 가장 큰 꿈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정 사장은 아이엠투자증권에서 물러날 당시 자신의 뜻을 이어받아 회사를 이끌 수 있는 임재택 현 사장을 추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 사장의 바람은 단순히 개인적인 희망사항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정 사장의 꿈은 잦은 CEO 교체로 위기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 금융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실현돼야 할 꿈이다.

● 정희동 사장은

△1956년 충북 진천 △1974년 용산고 △1980년 서울대 경영학과 △1980년 외환은행 △1984년 LG 기획조정실 △1989년 LG증권 △1999년 LG투자증권 상무(CFO) △2004년 LG투자증권 지원총괄 부사장 △2006년 피데스증권(현 흥국증권) 사장 △2008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2012년 아이엠투자증권(전 솔로몬투자증권) 사장 △2013년 KB투자증권 사장

"IB 등 경쟁력 키우고 합병 통해 몸집 불리겠다"

정회동 사장 경영 청사진 제시

"우리투자증권 인수가 무산됐지만 좌절하지 않습니다. 시장에 물건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합병을 통한 대형화 전까지 자체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지난해 우리투자증권 인수합병(M&A)을 앞두고 최대한 말을 아꼈던 정회동 사장은 앞으로 KB투자증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현재 매물로 나와 있는 동양증권·현대증권 등은 물론이고 잠재적 매물인 KDB대우증권에 대한 인수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그 이전에 KB투자증권 스스로 유기적 성장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지난해 취임 후 처음으로 조직을 개편한 투자금융(IB)의 잠재력을 높게 보고 있다. KB투자증권은 지난해 10월 기존의 기업금융본부 외에 투자금융본부를 신설하고 외부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정 사장은 "당사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채권자본시장(DCM)은 이익이 크게 나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올해는 투자금융본부가 우리 회사 IB의 대표 얼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자금융본부는 앞으로 KB금융지주뿐만 아니라 다른 은행, 자산운용사 등과 연계해 사회간접자본(SOC)·M&A 등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을 발굴할 계획이다. 정 사장은 투자금융본부가 이르면 올해부터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기업금융본부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정 사장은 "DCM 분야는 전통적 IB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에 현재대로 유지하는 게 맞다"며 "다만 IB의 본질은 창조인데 엄밀히 말해 DCM은 창조적인 성격이라기보다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창조적 IB인 투자금융본부와 연계해 시너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네트워크에 강하다는 것은 결국 고객을 잘 유치하고 잘 팔 수 있다는 의미인데 무엇을 파느냐에 따라 성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투자금융본부가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면 기업금융본부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판매로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미다.

당분간 상품 판매는 홀세일(법인영업) 위주로 추진할 계획이다.

정 사장은 "KB투자증권은 홀세일 부분이 강하기 때문에 우선 시작은 홀세일을 중심으로 제조력과 판매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며 "홀세일이 잘되면 리테일(일반영업) 부분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사장은 마지막으로 "앞으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금융본부와 홀세일, DCM 이 세 분야에 우리의 역량을 집중해 다른 증권사를 인수하더라도 피인수 증권사의 IB를 주도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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