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8,000만원→2억1,000만원→2억3,000만원→3억2,000만원.
기자가 전용 85㎡짜리 아파트를 새로 구하거나 재계약할 때마다 치렀던 전세보증금이다. 어디 비싼 동네로 옮긴 것이 아니다. 같은 아파트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통학 범위 내에서 인접한 단지로만 이사를 다녔다. 1억8,000만원에 전세계약한 것이 2007년, 3억2,000만원에 계약서를 쓴 것이 지난해였으니 5년 만에 1억6,000만원이 뛴 셈이다. 이 중 한번의 재계약 과정에서 무려 9,000만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목돈이 들었다. 구체적 가격에는 편차가 있겠지만 지난 몇 년간 이사를 다녔거나 재계약을 한 세입자들은 기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한 부동산 정보 제공업체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47주 동안 연속 상승했다. 거의 1년 가까이 한 주도 멈추지 않고 전셋값이 뛰었다는 의미다.
매맷값은 계속 떨어지는데 전셋값은 이처럼 쉬지 않고 오르다 보니 매매가 대비 전세가인 '전세가율' 역시 상승세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6월 말 현재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평균 56.7%. 개별 단지별로는 이미 60%를 넘은 곳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 비율이 70~80%에 달하는 곳도 속출했다. 60%라면 몰라도 70%, 80%를 넘어섰다면 큰 추가 부담 없이 차라리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이다.
부동산 시장 활황기에는 전세가율 상승이 매매가 상승의 선행지표로 여겨졌다. 전세가율이 60%를 넘으면 세입자들이 차라리 레버리지를 일으켜 집을 사려는 매매 수요로 전환돼 매매가도 뛴다는 논리다.
하지만 최근 수도권 주택 시장에서는 이 법칙이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전셋값이 치솟아도 집을 안 산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나마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가 낫지 괜히 집을 샀다가 값이라도 떨어지면 손해를 본다는 심리가 시장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전세 거주마저도 원금 보장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보증금이란 게 기한이 되면 그대로 되돌려 받는 돈이다. 문제는 집이 자칫 경매로 넘어갔을 경우다. 세입자가 전입신고ㆍ확정일자ㆍ실거주라는 세 가지 대항 요건을 모두 갖춘 최우선순위 채권자라도 경매 낙찰가가 전셋값 아래로 떨어지면 그만큼 떼이는 돈이 생기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이른바 요즘 흔히 말하는 '깡통 전세'다. 치솟는 전세가율이 우려되는 가장 큰 이유다.
전세가율이 내려갈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분자(分子)인 전셋값이 작아지는 것이 그 하나요, 분모(分母)인 매매가가 커지는 것이 나머지 하나다.
일단 현재 상황에서는 분자인 전셋값이 내려갈 희망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업계에 따르면 당장 하반기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이 상반기보다 3,000가구 가까이 줄어들어 공급 여건이 나아지긴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절대 입주 물량도 물량이지만 최근 상당수 전세 매물이 보증부 월세로 바뀌어 시장에 나오다 보니 체감 공급 물량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이사철도 아닌 요즘 웬만한 대단지조차 전세 매물을 찾기 어렵다. 세입자로서는 집주인이 부르는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전셋값이 더 오르면 올랐지 내려가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결국 내 전세보증금이 안전하려면 매맷값이 올라야 한다. 가격이 오르려면 수요가 뒷받침돼야 하고 그러려면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6월까지 크게 늘어났던 주택 거래량이 7월 들어 급감하면서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또다시 거래절벽의 조짐이 보인다. 이를 뒤집어보면 일단 정부의 강력한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이 최소한 6월까지는 약발이 먹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매 거래 활성화는 단순히 집 가진 사람만을 위한 대책이 아니다. 매매가 살아야 세입자들이 집주인에게 맡겨놓은 보증금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매매거래가 살면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전환돼 전셋값 자체가 떨어지는 효과는 덤이다. 정부는 추가대책 마련을 더 이상 주저해서는 안된다. dh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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