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달러 대비 루블화 가치는 장중 한때 지난 1998년 이후 최대폭인 12%까지 급등했다가 전날보다 9.92% 오른 달러당 61.1790루블로 마감했다. 이로써 한때 달러당 80루블까지 폭락했던 루블화는 지난 이틀간의 하락폭을 상당 부분 만회했다.
루블화 폭락세가 진정된 데는 이날 러시아 정부와 중앙은행이 잇따라 발표한 금융안정화 대책이 주효했다.
러시아 재무부는 국고 계좌에 보관된 70억달러 규모의 외화자산을 매각해 루블화 방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도 이날 경제 각료들과 주요 수출기업들이 참석한 회의를 주재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뒤이어 러시아 중앙은행은 금융기관의 안정성 강화 지원을 위해 내년에 은행들의 자본금을 확충하고 은행 및 기업들의 대외채무 지불 차질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외화자산 공여를 확대하는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또 은행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은행들이 외화거래 관련 감독 기준 이행평가에서 유가가 급락하기 전인 3·4분기 환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라고 러시아 타스통신 등이 전했다.
이 같은 조치는 당장 루블화 폭락세에 제동을 거는 데는 성공했지만 장기적 시장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닉 에비시 칵스톤 외환분석가는 "유가 급락으로 러시아 경제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며 "정부의 이번 조치는 무너지는 댐에 시멘트로 땜질을 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루블화 방어를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리는 등 후속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수출기업들이 보유한 상당 규모의 외화자산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최근의 루블화 폭락에는 수출기업들이 최대한도로 외화자산을 쌓아둔 것이 적잖은 요인이 됐다고 시장 관계자들을 인용해 전했다. 시장에서 정부의 자본통제 실시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수출기업들을 겨냥해 "루블화 가치 폭락을 막기 위해 기업들이 보유한 외화자산을 안정적으로 루블화로 바꾸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압박했다. 일각에서는 이고르 슈바로프 부총리가 국영기업들의 외화자산 매도를 지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단 러시아 정부는 수출기업들의 일일 외환운용 내역을 모니터링하되 자본통제는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지난 9월 돈세탁 혐의로 가택연금 조치됐던 러시아의 대표적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블라디미르 예브투셴코프를 이날 석방했다. 그는 러시아 최대 이동통신사 MTS, 석유기업 바시네프트 등을 소유한 시스테마 회장으로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집계에 따르면 러시아 15위 부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예브투셴코프 체포 당시 러시아 재계가 술렁였을 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도 위축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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