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적으로 볼 때 오대양 사건은 타살입니다.”
사상 최악의 참사를 일으킨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밝혀지면서 30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오대양 사건이 다시 세간의 구설에 오르고 있다. 오대양 사건은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에 위치한 공예품 회사 오대양의 공장 식당 천장에서 32명이 숨진 채 발견돼 세상을 경악케 한 사건. 당시 세간에는 유 전 회장이 배후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오대양 사건 때 시신 부검을 담당했던 법의학자 황적준(사진)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오대양 사건에 대한 황 교수의 첫 기억은 무척 더웠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내 시신의 부패도 빨리 진행됐다. “아주 더웠을 때 일어난 사건이었죠. 시신을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아침부터 부검을 시작했는데 마지막 시신에 이르러서는 다 부패해 상태가 변해 있었습니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다 보니 별의별 말이 다 나왔다고 한다. 검찰이 ‘자살’로 결론을 내렸지만 여론은 이를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모의 급성장과 관련해 유 전 회장과 최고 권력층과의 밀착설도 나돌았다.
“정권이 흔들흔들 했어요. 정치권이 관련됐다, 구원파가 연루됐다. 말들이 많았죠. 수사도 몇 번씩이나 했어요. 재수사를 아마 3번인가 했지요. 정권이 바뀌면서 수사를 또 하고 해서…. 하지만 결론은 자살이었어요. 검찰도, 경찰도, 그리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법적인 결과이고 법의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오대양 사건은 ‘타살’이라는 게 황 교수의 주장이다.
“남자 3명이 나머지를 다 죽인 후 차례로 서로를 죽이고 맨 마지막 남은 사람은 천장에 목을 매달고 죽었어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두 명 밖에 없어요. 그러니 타살이지요.”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32명은 천장에 모여 있었는데 그들에게 주먹밥들 해서 천장에 올려 준 두 명은 무사했다. “여자직원 2명이 살았는데 당시 수사기록을 보면 그 사람들 천장으로 못 올라간 게 한이라고 하더군요.”
당시 성폭행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황 교수는 사실 확인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검사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성폭행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근거가 없어요. 여신도에게 정액이 검출됐다고 해서 정량분석을 요구했는데 그걸 못했어요. 정량분석까지 해서 검증 받아야 증거로 채택을 할 수 있어요. 법의학책에도 나와 있고요. 정량 분석을 할 만한 능력이 없었던 겁니다. 그것 때문에 담당자랑 많이 싸웠죠.”
/연승자 yeonvic@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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