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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의병보다 관군이 약한 나라

우리 역사에서 끝없이 반복돼온 지배계층의 도덕적 해이와 탐욕

공무원연금개혁서 그대로 재현

일반국민보다 더 많은 혜택에 65세 정년연장까지 요구하나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왜군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부산 영도에 상륙했다. 그 모습을 본 경상좌수사 박홍은 전선(戰船)을 모조리 가라앉히고 식량 창고에 불을 지른 뒤 도망쳤다. 경상우수사 원균도 부하에게 우수영을 맡겨놓고 사라졌다. 부산진 성 안의 군민이 남아 저항했으나 결국 3,000명이 모조리 전사하거나 학살당했다.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진격했다. 관군은 가는 곳마다 무너졌다. 그러자 나라 곳곳에서 의병(義兵)이 일어났다. 이들을 앞장서서 지휘한 사람들은 대부분 민간인 출신 의병장들이었다.

대몽 항쟁은 고려가 몽골과 맞서 싸운 전쟁으로 몽골군은 1231년부터 1259년까지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다. 몽골군에게 고려 땅은 철저히 유린당했다. 지배계층은 도망치기 바빴다. 1232년 충북 충주성도 다를 바 없었다. 노비와 잡류들만이 남아 성을 지켰다.

전투가 끝나자 돌아온 양반들은 노비군이 관의 기물을 훔쳤다며 죄를 뒤집어씌웠다. 분노한 노비군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용맹무쌍한 관군에 의해 진압됐다. 20년이 지나 몽골군의 5차 침입이 일어난 1253년에도 이 성을 지킨 주력은 노비와 하층민이었다. 정부가 이때 지휘를 맡긴 장군이 경기도 용인시 소재 처인성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김윤후로 그 역시 평민 출신이다. 무술을 닦은 승려로만 알려져 있다.

대몽 항쟁 중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관리들은 모조리 강화도로 도망쳤다. 전국이 분탕질당해도 그곳은 안전했다. 이들은 별로 할 일이 없자 육지에서 거둬들인 쌀로 빚은 술이나 마시면서 몽골군을 씹어대기나 했다. 대신 육지의 백성에게는 금주령과 쌀밥 금지령을 내렸다. 전란 중에 한 톨의 곡식도 아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나라 관리들의 DNA가 어디 가겠는가. 최근 국회를 통과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강화도 정부가 내린 쌀밥 금지령과 닮아 있다. 애초의 공무원연금 개혁은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연금 적자가 급증해 국가 재정이 파탄 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래서 연금 보험료는 올리고 지급률은 낮추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국민연금과 통합시켜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한 개혁안은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한 맹탕이었다. 나라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는 국회의원들이 정작 국민은 팽개친 채 공무원들에게 철저히 아부한 결과다.



여야 의원들은 향후 70년간 공무원연금 지원금을 333조원 줄일 것이라며 대단한 성과인 양 자랑하고 있지만 개정 공무원연금안조차 앞으로 70년간 1,654조원을 국민 세금으로 갖다 바쳐야 한다. 공무원연금 지급액도 30년 가입자 기준 국민연금의 1.7배에 달한다. 관리들은 왜 그토록 특혜를 당연시하는가.

정부가 최근 노동계와 민간 기업에 임금피크제 독촉에 나섰다.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 기업들의 고용 능력이 급감해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년만 연장되고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지 않을 경우 청년 실업률이 현재의 10% 수준에서 16%로 오르고 실업자가 73만명에 이를 것이라니 청년 복지를 고민하는 정부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관리 집단의 처신이다. 6급 이하 공무원들은 2013년부터 60세 정년이 됐다. 물론 임금 체계는 그대로다. 어라, 자기네들의 임금피크제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

이뿐인가. 정부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피해(?)를 보게 됐다며 공무원 정년을 추가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65세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나라 관리들의 DNA다. 달라진 것이 없다.

/이신우 논설실장 shinw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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