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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또다시 연저점을 경신했다. 정부가 강도 높은 개입에 나섰던 지난 10월24일 이후 한 달 보름 만이다.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가뜩이나 하락압력을 받던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1,021원54전까지 밀렸다. 2008년 9월8일(994원90전) 이후 5년 3개월 만에 최저치다.
외환시장 안팎에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지만 외환당국은 딱히 눈에 띄는 개입에 나서지 않고 있다. 10월과는 확실히 대조적이다. 당국이 환율 추가하락을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말 1,050원 깨질 가능성=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5원 떨어진 1,053원에 출발, 이후 1,052원에서 연저점을 찍은 후 1,052~1,053원대에서 횡보하다가 개장했던 가격과 같은 1,053원에 마감했다. 종전 원·달러 환율 연저점은 10월24일 기록했던 1,054원30전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미국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좋게 나왔으나 서프라이즈 수준은 아니고 12월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도 낮아 위험자산 선호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외국인투자가들은 코스피시장에서 754억원을 순매수, 5거래일 만에 한국주식을 사들였다. 또 다른 외환시장 관계자는 "시장의 관심은 1,050원이 뚫릴까에 쏠려 있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 지지선을 2011년 저점인 1,048원90전으로 보고 있다. 정경팔 외환선물 시장분석팀장은 "1,050원을 하향 돌파한다면 이달 중 1,035원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고 내년 1·4분기 중에는 1,000원이 하향 돌파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2개월 가까이 이어져온 박스권 흐름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손발 묶인 외환당국=시장의 눈길이 외환당국에 쏠리는 것은 원·엔 환율 하락세가 너무 가파르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이 1,020원대에 진입한 것은 사실상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2008년 9월8일 100엔당 994원90전이던 원·엔 환율은 9월9일 1,024원47전으로 치솟았고 이후 1,300원대까지 상승곡선을 그렸다. 1,020원 선 진입은 1,000원 선 하향 돌파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인 셈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너무 '차분한' 외환당국 모습을 1년 전과 비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에도 서울 외환시장은 비상상황이었다. 미국의 고용지표 호조와 수출업체 달러매도로 원·달러 환율이 1,080원 선 아래로 급락했다.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선물환 포지션 한도 등 정부가 꺼내 들 수 있는 카드를 언급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1년 사이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10월 나온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간접적이나마 부담이 된 탓도 있지만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기록은 사실상 외환당국의 손과 발을 묶었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원화뿐 아니라 대부분 아시아국가 통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강력한 개입을 막는 요인이다.
국제 외환시장이 이달 중순부터 사실상 연말휴가 시즌에 돌입한다는 점도 불안하다. 정 팀장은 "연말 거래량이 적으면 시장 주체세력에 따라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며 "연말 100엔당 1,012원 전망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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