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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정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벤처에 삼성 임원도 올 수 있게 스톡옵션 규제 풀어야<br>세금 감면한도 대폭 확대 등 모험·도전 보상시스템 필요<br>대기업 의존 없이 독자성장 가능한 기술벤처 많이 나와야<br>초기기업 투자받기 어려워… 크라우드펀드 도입도 시급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험과 도전에 대해 보상해주는 사회경제적 시스템부터 갖춰야 합니다." 지난 1월 말 제11대 벤처기업협회 신임 회장으로 추대된 정준(52·사진) 회장은 8일 서울경제신문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수차례에 걸쳐 혁신과 도전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역설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사람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강력한 유인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인재가 벤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보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는 얘기다. 정 회장은 "경제성장 전략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꾸기로 했다면 도전적인 일을 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에게 큰 보상이 따른다는 메시지를 정부가 줘야 한다"며 "안정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 더 큰 보상을 주는 현재의 시스템부터 혁파하지 않으면 창조경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기업가 정신 교육만 한다고 좋은 인재가 벤처에 뛰어드는 게 아닙니다. 안정적인 자리에 취업하는 것보다 창업을 할 때 기대수익이 더 커야 인재가 몰리는 겁니다."

정 회장은 '창업 강국'을 만들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에는 공감하지만 정책의 방향성에는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이제는 자금지원 위주의 1차원적 정책을 벗어나 질 높은 창업을 유인해낼 수 있는 질적 변화를 모색할 때라는 지적이다. 그는 "미국인들은 창업가 정신이 뛰어나서 창업이 활발한 게 아니라 창업을 할 때 기대할 수 있는 수익 자체가 크기 때문에 도전하는 창업자가 많은 것"이라며 "모험과 도전에 대한 보상으로 우수한 인재가 벤처로 몰리면 벤처의 성공률이 높아지고, 벤처펀드 수익률이 높아지면 현재 공공자금 중심의 벤처펀드가 민간 중심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보상 시스템의 대표적인 예가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이다. 상대적으로 인적·물적자본이 부족한 벤처기업은 당장의 높은 급여 대신 미래성장에 따른 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톡옵션으로 우수 인재를 유치해야 하는데 현재의 스톡옵션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대기업과 공기업·언론사·대학 등에 사표를 내고 벤처에 승부수를 던지는 사례가 흔했지만 지금은 위험 감수에 따른 보상이라 하기에는 세금 부담이 커 옵션 행사 후 얻는 실질적 소득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현 제도로는 스톡옵션을 급여의 보조수단으로밖에 활용할 수 없다"며 "우수인력을 벤처기업으로 이동시킨다는 본래 목적에 걸맞게 스톡옵션에 적용하는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들어 스톡옵션 납세방식을 근로소득세와 양도소득세로 이원화했지만 양도소득세 납세방식의 경우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하고 1년간 보유한 경우에만 혜택을 주고 있어 세금감면효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 회장은 "구글이 에릭 슈밋 같은 경험 많은 인재를 영입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스톡옵션제도가 본래의 목적에 맞게 작동하고 있었던 덕분"이라며 "국내 벤처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삼성전자 임원도 유치할 수 있는 수준의 보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데 1억원이라는 한도는 우수인재를 유치한다는 본래 목적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세제혜택과 연구개발(R&D) 지원 등 정부의 산업육성정책도 패러다임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 회장은 "전통 제조업 육성을 강조했던 20여년 전 만들어진 인센티브제도 중 현재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도 여전히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며 "산업정책 전반을 점검해 혁신형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쪽으로 인센티브제도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연간 신설법인 8만개 돌파와 벤처기업 3만개 돌파 등 각종 지표를 통해 정부에서는 제2벤처붐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정 회장은 여전히 2000년대 초 수준의 붐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장 단적인 예가 인력의 이동이다. 정 회장은 "이공계만 국한해서 보면 대학과 연구소에 우수인력이 여전히 편중돼 있고 벤처 등 기술혁신형 기업에는 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졸업을 앞둔 이공계 대학생들 사이에서 여전히 교수, 국책연구원, 대기업 취업의 순으로 직업선호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질적으로 벤처 생태계가 활성화됐다는 평가는 내리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정부지원 없이도 민간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펀드 조성이 활성화되는 생태계가 구축돼야 벤처 창업이 활발해진다는 설명이다.

창업 인프라와 관련해서도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투자보다는 융자 중심의 자금구조, 창업자 연대보증 만연, 실패에 따른 안전망 부재 등은 오랜 기간 업계에서 개선을 요구했고 정부 역시 적극적으로 개선에 나섰지만 아직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 회장은 "2년간의 노력에도 여전히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하지 않으면 초기기업은 투자를 받아내기가 어렵다"며 "4월 국회에 상정될 크라우드펀드제도라든가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한 전면적인 세제혜택 도입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창업기업이 대출을 받을 경우 창업자를 연대보증인으로 세우는 금융권 관례 역시 사라져야 할 제도로 꼽고 있다. 정 회장은 "그간 정부에서 꾸준한 노력을 했지만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것이 사업자 연대보증 문제"라며 "본질적으로 해결하려면 초기기업 투자가 확대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현재로서는 정부가 마련한 혜택이 본래 취지대로 좋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창업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느끼는 초기기업에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 회장은 정책을 수립하는 실무자들이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좋은 제도를 마련하고도 투자자 보호 등을 내세우며 남겨둔 규제 탓에 실효성이 없어지는 사례가 빈번한데 정부에서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정부에서는 200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만들어졌던 각종 규제를 최근 2년간 많이 풀어줬다고 평가하겠지만 현장에서는 규제 개혁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올해는 협회 차원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모으고 정부에 적극적으로 건의하는 방식으로 규제 개혁을 요구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벤처 업계 전반의 체질 변화 역시 정 회장이 꼽는 장기과제다. 대기업 납품 위주의 수익구조를 가진 벤처기업보다는 독자적인 기술과 시장으로 승부하는 벤처기업이 다수가 돼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와 대기업이 최근 전국적으로 늘리고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 회장은 "센터의 기본구조는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을 끌어주는 방식으로 성장을 지원한다는 건데 이 구조에서는 벤처기업이 협업하는 대기업보다 커질 수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며 "대기업과의 협력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벤처 모델 외에 독자적으로 기술력과 역량을 쌓으면서 중견기업으로 또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모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 기술 벤처의 70%는 여전히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로 추정되는데 나머지 30%가 다수가 돼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피력했다.

올해로 벤처기업협회는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자축하듯 올 1월에는 벤처기업 수가 3만개를 돌파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정 회장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2등부터는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된 만큼 우리나라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벤처 생태계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우수한 인재들이 벤처 업계로 유입되고 나아가 국내 벤처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초 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벤처 생태계를 만들었던 과거 경험을 되살려 벤처기업들 스스로 이스라엘과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벤치마킹하는 벤처 생태계를 다시 만들어내는 데 앞장서겠다는 약속이다.

He is …



△1963년 서울 △198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1993년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박사 △1993년 일본 히타치중앙연구소 연구원 △1994년 KT 연구개발본부 선임연구원 △1998년~ 쏠리드 대표이사 사장 △2014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2015년~ 벤처기업협회 회장



1998년 KT 사내벤처 1호로 설립… 美·日 통신장비 시장 강자로 키워

■ 정준 회장과 '쏠리드'

미국 뉴욕의 200여개 역사를 포함한 지하철 전 구간은 물론이고 뉴욕의 랜드마크 건물인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주요 공항에까지 이동통신망 핵심장비인 무선통신중계기 시스템(Distributed Antenna System·DAS)을 납품한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있다. 바로 정준 신임 벤처기업협회 회장이 지난 1998년 설립해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 통신장비 시장의 강자로 키운 쏠리드다.

KT(당시 한국통신)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정 회장은 KT 사내벤처 1호로 쏠리드를 설립했다. 지난 10여년간 KT와 SK텔레콤에 동시에 무선통신중계기를 납품하는 유일한 기업이자 시장 1위 업체로 CDMA·WCDMA·WiBro·LTE 등 통신환경 변화에 한발 앞서 대처하며 국내 통신산업을 주도했고 2006년 연매출 1,200억원을 넘어서며 일찌감치 '벤처 천억클럽(연매출 1,000억원 이상 벤처기업)'에 가입했다. 그러나 통신 시장 위축으로 국내 중계기 시장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쏠리드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이듬해 매출이 780억원대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일찌감치 공들여온 해외시장에서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다수 통신장비회사들이 동남아시아 등 이머징마켓 위주로 해외 진출을 해온 반면 쏠리드는 수익성이 좋으면서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선진국 시장을 노크했다. 2012년에는 뉴욕 지하철 시스템에 무선 커버리지와 커패시티를 제공하는 DAS 장비 공급사로 선정된 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듀크대 등 주요 시설 납품사로 선정돼 현재는 미국 중계기 시장 4위 업체로 부상했다. 댁내형 제품과 옥외형 ICS 위주로 중계기 시장을 개척했던 일본에서는 신제품 개발로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는 한편 대형 이통사 위주로 제휴협력을 강화하며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정 회장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시장과 중동·남미 같은 이머징 마켓 공략을 본격화해 해외매출 비중을 50%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정 회장은 "내수시장이 거의 없는 이스라엘과 달리 한국은 소규모 기업들이 사업을 일정 수준으로 영위할 수 있는 규모의 내수시장이 있다는 점에서 많은 기업들이 국내시장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은 없는 만큼 선배 벤처인으로서 해외시장 개척의 좋은 선례를 남겨 후배 기업들의 '본 투 글로벌'을 돕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쏠리드의 의미는 '건실한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다. 수년간 해외시장을 두드린 끝에 결실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건실한 기술' 덕분이었다. 정 회장은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끝으로 조언을 부탁하자 "세계시장에서 인정받을 만한 실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며 "시작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에 눈높이에 맞게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권욱기자

대담=오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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