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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앓고 있다] 2부:현장에서 찾는 해법 <1> 명품 장인 키우는 스위스

기업은 직업교육 투자하고 학생은 일·학습 병행… 실업률 뚝<br>정부·학교와 3각 협력… 기업 연 6조 기꺼이 부담<br>주 1일 등교 4일 출근 등 교육과정 현장 중심으로


스위스 르로클에 위치한 시계전문직업학교에서 제작실습시간 중 전문교사가 학생이 조립해온 무브먼트(기계식 시계 구동장치)를 살펴보고 있다. /르로클=이혜진기자

환하게 형광등을 밝힌 실습실에서 흰 가운을 입은 학생들이 숨죽인 채 책상에 턱을 대고 손에 쥔 집게 끝에 온 신경을 모으고 있다. 두꺼운 외눈 돋보기안경 넘어 보이는 것은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는 0.04㎜ 두께의 헤어스프링이다. 꼼짝 않고 있는 듯한 학생들은 실은 무브먼트(기계식 시계 구동장치)에 들어가는 헤어스프링의 각도를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시계 전문교사인 세드릭 오베르송씨는 "밸런스휠에 헤어스프링을 고정하는 일은 시계의 정확도와 직결되는 매우 섬세하고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6년 전까지 명품 시계회사인 오데마피게에서 제작자로 일했다.

지난달 기자가 찾은 스위스 중부 시계산업지대인 르로클에 위치한 시폼(CIFOM) 시계전문직업학교. 한 반에 10명이 안 되는 학생들이 고급 수동시계의 핵심부품인 무브먼트 조립에 한창이었다. 학교에서 시계 제작 이론과 기본적인 기술을 배운 학생들은 시계회사로 가서 경험을 쌓는다. 인근에는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고급 시계회사들의 제조공장이 위치한다. 이날 수업시간에 만난 2학년 장 제라벡(17)은 자신이 직접 만든 시계를 보여주며 "회사에서 경험을 더 쌓은 뒤 골동품 시계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청년실업이 급증하면서 스위스 직업교육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스위스가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낮은 수준의 청년실업률을 유지하는 비결이 스위스 직업교육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민관학(정부·기업·학교) 협력을 통해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직업교육프로그램(VET)을 채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경제포럼 등은 구직·구인 미스매치로 인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어서 스위스식 직업교육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세계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스위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 6월 청년실업률 2.7%에 불과했다.

◇1일 등교, 4일 출근하는 학생들=스위스 직업교육은 학교 교육과 기업 실습의 두 축으로 이뤄져 있어 흔히 '일·학습 듀얼시스템'으로 불리지만 실상 기업 내 현장실습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3~4년짜리 직업교육 프로그램의 경우 저학년 때는 회사와 학교에 가는 날짜가 주당 각각 3일과 2일, 고학년은 4일을 회사에 출근하고 학교 수업은 하루만 받는다.

철재 전문 강소기업 슈바이저사에서 일하는 미하엘 마이어(20)는 올해 4년짜리 메탈전문가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마친다. 그도 물론 일주일에 하루는 학교에 가고 나머지 4일은 회사로 출근한다. 그는 이제는 생산현장에 바로 투입해도 엔지니어 한 사람 몫의 일을 거뜬히 해낼 정도로 숙련도를 쌓았다. 그는 "하루는 학교에 가서 외국어·수학·미술과 같은 일반 교양과목을 듣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일하며 교육을 받는다"며 "매일 일만 하거나 공부만 하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학교에 가면 재미있고 회사에 오면 좋아하는 일도 배우고 돈을 벌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도 회사 선택이 우선이다. 먼저 회사에 직업교육 실습 자리를 구하면 해당 직업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가 배정된다. 학교에서는 일반 교양과목 외에도 직업과 관련한 기본 이론수업을 병행한다. 안 데브라 시폼 교감은 "우리 학교는 시계 제작과 정밀기계 직업 프로그램에 대한 학교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그 외의 직업교육은 인근의 다른 학교가 맡는 등 학교별로 직업교육을 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주도하는 직업교육=스위스 현지에서 만난 정부·학교·기업 관계자 모두 스위스 직업교육의 성공 요인으로 기업과 시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한마디로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가 관리감독하며 학교가 돕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스위스 연방교육연구혁신청이 경제교육연구부 산하기관인 점만 봐도 스위스 정부가 직업교육과 산업 행정을 얼마나 밀접하게 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스위스의 직업교육이 시장 중심, 기업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재편된 시기는 지난 2004년부터다. 요제프 비드머 연방교육혁신청 부청장은 "오래전부터 도제교육 시스템이 발달해 있었지만 기업과 정부·학교의 역할이 불분명해 직업교육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제기됐고 아예 기업에 직업교육 내용을 결정하도록 권한을 위임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300개의 직업협회가 250개의 직업교육프로그램(VET) 내용을 주도적으로 결정한다. 예컨대 정밀기계 직업교육과정 1년 차에는 어떤 기술교육 프로그램이 몇 시간 이상 포함돼야 하는지 등을 정하는 것이다. 산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를 교육과정으로 표준화한다. 헤스 회장은 "스위스기계산업협회는 전체 250개 직업 중 8개의 직업을 관장한다"며 "이를 위해 10명의 직업교육 프로그램 전담인력이 상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회원사로부터 상시적으로 직업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개선 의견을 수렴해 정부와 수시로 논의하며 실습과정을 개정하고 있다.

◇기업 6조원 비용도 기꺼이 부담=직업교육에 있어 기업들의 권한 만큼 책임도 크다. 가장 큰 것은 경제적 부담이다. 스위스연방교육청에 따르면 직업교육 관련 정부예산은 연간 35억스위스프랑(약 4조300억원).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부담은 53억프랑(6조1,000억원)이다. 정부보다 1.5배 많은 비용을 산업계가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스위스 기업들은 이를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고 여긴다. 슈바이저사의 경우 실습 1년 차 학생의 경우 월 350프랑(40만원), 2년 차 874프랑(100만원), 3년 차 이상 1,000프랑(115만원)의 월급을 지급한다. 이외에도 각종 보험과 실습교재, 교사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이 들어간다. 이 회사의 자비에 니틀리히 팀장은 "연차가 올라갈수록 회사 생산기여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비용을 투입하더라도 교육한 인력이 회사에 취직하는 순간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말했다. 슈바이저사는 지난해 회사에서 실습을 마친 14명 모두를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올해도 졸업 예정인 16명을 모두 채용할 방침이다. 베른대 연구에 따르면 실습생의 저임금 노동력과 인력 교육비용 절감 등으로 기업들이 얻는 연간 이익이 58억프랑에 달한다. 투자(53억프랑)보다 이득이 더 큰 셈이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도 교육비 한 푼 안 들이고 자녀 교육을 마칠 수 있고 취업 걱정도 없다. 사교육비와 취업 걱정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한국의 현실과는 딴판이다.

그러나 스위스식 직업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10대 중반에 직업을 선택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스위스에서도 교육 수준에 따른 소득격차가 확대되는 데 대한 학부모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취리히의 한 중학교 교사인 올리버 베어씨는 "진학상담을 하다 보면 최근 스위스 부모들도 자녀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인생에 대한 선택권은 학생 본인들에게 있기 때문에 일부 학구적인 학생들 외에는 대부분 직업학교에 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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