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큰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30대 워킹맘 김모씨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울려대는 카카오톡 메시지에 몸살을 앓고 있다. 같은 반 엄마들끼리 모인 카톡 채팅방에는 학교 숙제며 준비물부터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생활이 낱낱이 공개된다. 오전 8시부터 퇴근 무렵까지 확인한 카톡 메시지는 무려 328개. 전부 확인하지 못해 정보를 놓친 김씨는 다음날 아이의 준비물을 미처 챙기지 못하는 실수로 워킹맘의 비애를 맛봤다.
야근 후 귀가한 그는 알림장을 펼쳐보고 엄청난 숙제량에 또 한번 좌절했다. 도저히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이른바 '엄마표 숙제'였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자정에 자는 아이와 아빠를 깨워 오리고 붙이고 숙제를 끝냈다"는 김씨는 "일하는 엄마는 그룹에 안 끼워줄까 봐 내놓고 일한다는 말도 못하고 어떤 때는 일하는 내가 죄인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중학생 딸을 키우는 40대 워킹맘 이모씨는 매년 3월 말 학부모총회 시즌이 가까워지면 총회에 갈지 말지 고민이 시작된다. 학교에 자주 가기 어려운 만큼 이때 가서 담임선생님도 만나고 정보도 얻고 싶지만 학부모 시험감독, 엄마 봉사활동, 급식 식재료 검사, 스쿨폴리스 등 학교에서 요청하는 학부모 참여 프로그램에 거의 응할 수 없다 보니 총회 참석 자체가 바늘방석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일하느라 학교 일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면 다른 엄마들이 그럴 걸 왜 왔냐며 눈치를 주는 것 같아 맘이 편하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박근혜정부가 여성인력 육성을 외치고 있다. 여성을 대한민국 성장의 핵심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7년까지 여성인재 10만명을 키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한국은 이미 '여풍'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외무ㆍ행정ㆍ사법 고시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이 절반을 넘나들고 대학 진학률은 몇 년 전부터 여성이 남성을 추월했다. 지난해는 20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62.9%)이 사상 처음으로 남성(62.6%)을 앞질렀다.
하지만 결혼과 임신ㆍ출산, 육아가 시작되는 30대 이후부터는 상황이 확 달라진다. 30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남성 93.3%, 여성 56.0%로 큰 차이가 벌어진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대졸여성 신입사원 비율은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슷하지만 중간 및 고위급 관리자 비율은 꼴찌 수준이다.
위의 김씨 사례에서 보듯 한국의 워킹맘들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놓고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기가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때다. 유치원 때와 달리 초등학교 저학년은 오후1시면 하교한다. 방과후 돌봄교실 제도가 있지만 수요와 공급이 터무니없이 불균형하다. 지난해 돌봄교실을 이용한 학생은 전체 초등학교 1학년생의 3분의1에 불과하다고 한다. 더욱이 돌봄교실의 우선순위가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정, 다자녀, 다문화 가정 다음이 맞벌이부부이기 때문에 워킹맘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결국 고민하던 워킹맘은 가장 쉬운 방법인 사표를 던지는 것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 여성의 고용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이유가 바로 이런 현실 때문이다.
10만 여성인력을 양성하려면 중도에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정부가 워킹맘의 육아를 어느 정도까지 책임져주는 시스템이 선결과제다. 지금처럼 친정어머니ㆍ시어머니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혹은 '재중동포 이모'들의 도움을 사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만 0~5세 전면 무상보육이 올해부터 시작됐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시작이 반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 제도가 그래도 첫 단추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정책의지 덕분이다. 앞으로 육아휴직제를 비롯해 야간ㆍ시간 연장 보육 서비스, 아빠 출산휴가제, 남성 육아휴직제 등 다양하고 폭넓은 보육지원 시스템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하고도 기민한 '워킹맘 프렌들리' 정책 드라이브가 가장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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