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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영양분' 독거노인에 밑반찬 도시락 배달記
입력2005-01-19 11:53:05
수정
2005.01.19 11:53:05
"신길사회복지관엔 추위가 없다" 자원봉사자 이마에 어느새 구슬땀<br>노인 건강상태 따라 '반찬 세분'…가는 곳마다 "고마워서 어쩌지.."
아침해가 뜨려면 한 시간도 더 남은 19일 새벽 6시 영등포구 신길종합사회복지관 구내식당 주방.
무와 함께 방금 졸여 만든 꽁치 서너 도막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비닐봉지에 싸여 플라스틱 반찬통에 담긴다. 꽁치조림이 지글거리는 냄비 옆에선 도라지 볶는 `바쁜' 소리가 들리더니 도라지 향기가 주방 안에 엷게 퍼진다.
치아가 약해진 노인들에게 자칫 질길 수도 있는 도라지 볶음은 더 신경을 써야한다. 요리를 맡은 자원봉사자 3명은 이날 반찬을 배달해야 하는 독거노인의 명단을꼼꼼히 살펴보더니 도라지를 따로 덜어내 도라지가 무르게 되도록 조금 더 오래 볶는다.
꽁치조림도 고혈압 증세가 있는 노인들이 먹는 것은 매운 양념을 적게 해야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메뉴지만 여간 신경을 써야하는 작업이 아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독거노인의 초라한 밥상을 채울 밑반찬을 담는 자원봉사자역시 그 연배의 할머니들이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다 기자가 "힘드시겠어요"라고 멋쩍게 말을 붙여보자 이정숙(72) 할머니에게서 금세 정다운 대답이 돌아온다.
"힘들기는...재미있어요. 그래서 하는 거지. 집에만 있어봐, 아저씨(할아버지)가 잔소리만 늘어 놓지." 오전 7시가 가까워오자 배달을 맡은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찬통을 승합차로 옮긴다.
신참 배달봉사자인 기자에게는 신길동과 영등포동에 혼자 사는 노인 4명분 밑반찬통 8개가 떨어졌다. 늦어도 1시간 안에 배달을 마쳐야 한다.
노인들은 대부분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기 때문에 혹여 반찬 배달이 늦으면 `맨밥'으로 때우거나 아니면 아침을 거르기 일쑤라는 것. 요즘은 쌀이 없는 노인들은 거의 없기 때문에 독거노인에게 밑반찬은 요긴하고 고마운 선물이다.
특히 혼자 사는 할아버지들은 반찬 만드는 것을 아예 포기해 밑반찬에 고른 영양분 공급은 꼭 필요하다.
기자의 배달을 도와주던 김양선 사회복지사는 "밑반찬 도시락은 일주일에 두번일반 영양식인 A형과 영양관리식인 B형으로 나눠 만드는데 B형은 다시 당뇨, 고혈압,치아상태 유약에 따라 조리법을 달리 한다"고 설명했다.
처음 배달을 해야하는 신길동 뒷골목에 12인승 승합차가 들어서자 골목이 꽉 찼다. 1970년대로 시계가 되돌아가 멈춘 듯한 풍경의 오래된 한옥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할아버지 반찬 가져왔어요" "처음 보는 청년이네" "오늘 처음 왔어요 맛있게드세요" "매번 이거 고마워서...반찬이 없어서 아침을 안 먹으려고 했는데 말이야" 안경철(68) 할아버지와 잠깐 아침인사를 겸한 대화가 오간다.
배달차는 꼬불꼬불한 뒷골목을 요령좋게 빠져나가 조강순(72) 할머니집 앞에 기자를 내려놓았다.
"추운데 수고가 많아요"라고 기자의 손을 잡은 조 할머니의 방은 적적함을 달래려고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만 왱왱거렸다. 막 돌아서려는 신참 반찬배달부의 옷자락을 조 할머니가 꽉 붙잡는다. 전날 심야 취재때문에 2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한 기자의 피곤한 기색을 눈치챈 걸까. 조 할머니는 `드링크제' 한 병을 손에 쥐여준다.
"이거 하나 먹고 가. 차갑긴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괜찮을 거야" 다음은 당뇨에다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어 방을 벗어나기도 힘든 진남춘(63)할머니 집이다.
김 복지사는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대문을 열쇠로 열고 거리낌 없이 들어간다. 거동이 불편한 진 할머니가 김 복지사에게 맡겨 놓았다는 것이다. 월 37만원으로 생활하는 진 할머니에게 난방비가 추가로 드는 겨울은 너무나도 힘든 계절이라는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도시락 네 개를 모두 배달하고 난 시각은 오전 7시35분. 마음이 급했는지 처음이라서 긴장이 됐는지 그제야 이마에 땀이 맺힌다.
이날 배달된 밑반찬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정부보조금 2천500원'.
자연스레 이야기는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한 `부실 도시락' 문제로 이어졌다. 김 복지사는 "봉사란 것이 자기 이윤 다 남겨놓고 하는 것은 아닐 텐데요"라며 안타까워한다.
2천500원을 반찬 재료에 모두 쏟아 넣고 나머지는 자원봉사로 메우고 있는 밑반찬 도시락 봉사는 `행복의 영양분'을 우리 사회의 그늘에 쉼없이 전하고 있었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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