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과 공유의 시대다.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도 패권주의에서 다자주의로 옮겨갔다. 1990년대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이후 미국·유럽·일본 중심의 경제패권 리더십은 약화되고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와 MAVINS(멕시코·호주·베트남·인도네시아·나이지리아·남아공) 등 신흥국들의 급성장이 맞물려 '경제협력의 리더십'이 더 중요해졌다.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특정 국가의 주도가 아니라 글로벌 협력을 통해 상생하고 성장하는 것이 바로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이다.
글로벌 사회의 패러다임 역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전에 따라 협력과 공유로 방향을 바꿨다. 세계적 석학 제러미 리프킨은 인터넷의 발달과 보급에 힘입어 기존의 수직사회가 수평사회로 전환하고 있고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생존과 성공을 보장한다고 지적했다. 또 얀 판데이크 등 여러 사회학자들은 산업혁명을 이끌어낸 증기기관과 마찬가지로 컴퓨터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네트워크 사회로의 사회혁명을 촉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네트워크 사회는 경계가 없고 상호연관성을 기반으로 하는 협력과 공유의 사회다.
이런 글로벌 경제·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진한 배경에는 정보통신기술(ICT)의 역할이 컸다. ICT의 발전은 지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을 공유하고 지구촌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이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ICT가 아니었다면 협력과 공유라는 지금의 지구촌 패러다임은 쉽게 구축되지 못했을 것이다.
올가을 글로벌 ICT 협력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국제회의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 바로 'ITU 전권회의'다. ITU 전권회의는 유엔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최고위급 의사결정회의로 ICT 분야의 올림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어떻게 하면 글로벌 ICT가 더 발전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고 그 규칙과 방향성을 결정하는 자리로 세계인의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는 행사다.
이번 회의에서는 인류의 공동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주요 의제들이 논의된다. 먼저 우리나라는 ITU 전권회의 의장국으로서 '인터넷 거버넌스'와 같이 분쟁의 소지가 많은 의제를 잘 조율해 글로벌 ICT 협력의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있는 'ICT와 타 산업 간 융합', '사물인터넷(IoT)' 등 신규 결의안을 제정해 글로벌 성장동력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또 이번 ITU 전권회의 개최와 맞물려 ICT 전시회, 콘퍼런스, 스마트 한류 문화행사 등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축제도 함께 펼쳐진다. 특히 국내 최대의 ICT 전시회인 '월드 IT쇼(WIS)'를 통해 우리나라의 혁신적 연구성과와 제품들을 세계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축제는 단순히 여흥의 성격을 가지는 부대행사가 아니라 미래 ICT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방향성과 청사진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7월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서는 '이인동심 기력단금(二人同心 基力斷金)'이라는 사자성어가 화제가 됐다. 포럼에 참석했던 중국 최대 검색포털 업체 바이두의 리옌훙 회장이 한 말이다. 역경에 쓰여 있는 '기리단금(基利斷金)'을 약간 변형해 '기력단금'이라고 말한 듯한데 결국 그 의미는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힘)이 쇠라도 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두 사람이 모여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데 글로벌 ICT 협력의 길을 세계인이 함께 모색하는 ITU 전권회의는 어떨까. '이인동심 기리단금'을 뛰어넘는 협력의 힘을 발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번 회의의 성공적인 진행과 협력적 성과를 진심으로 기대하는 바다.
김흥남 ETRI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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