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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신창타이'vs'뉴 이코노미'

中 정부 거품경제 한국과 닮은꼴

'그린스펀 풋'은 시장 안정 기여

G2 위기대응능력 또 시험대 올라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맞붙었던 지난 1992년 대선 투표일을 하루 앞둔 12월17일의 일이다. 여당인 민자당 후보로 나선 YS가 증권거래소를 방문한 그날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장 마감 무렵 전산 장애가 발생해 주식 거래가 30분 정도 연장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여러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날 사고는 증시안정기금과 기관투자가들이 막판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한꺼번에 대량의 매수 주문을 쏟아내면서 빚어진 것이었다. 기관들은 금융당국의 지시에 따라 한전·포철 등 대형 제조주와 금융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였고 결국 전산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었다. 당국은 부인하고 나섰지만 정치권 눈치를 보느라 기관에 전화를 걸어 직접 매수를 지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증권전산(지금의 코스콤) 관계자들은 전산 시스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은밀한 매수 작전이 발각(?)될 뻔했다며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는 후문이다.

요즘 중국 증시를 지켜보노라면 '관제(官製) 주가'가 판치던 과거 우리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주가가 연일 폭락하자 정부에 부양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가 하면 당국은 연기금까지 동원해 무조건 주식을 사들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심지어 외국인투자가들에게 선물 거래를 일정 수준으로 줄이고 매매 규모를 제한하는 등의 규제조치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주식 투자를 강권했던 정부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문제는 중국 정부의 시장조치가 갈수록 위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주가 끌어올리기에 나선 것이 오히려 역풍을 맞다 보니 시장의 힘이 공산당 정부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중국 경제가 느리지만 건강한 성장을 지향하는 '신창타이(新常態) 시대'를 맞았다는 당 지도부의 호언장담이 무색해질 일이다. 이래저래 정부에 대한 불신감만 커지면서 중국 정부의 경제 위기 관리 능력은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시장 안정화 대책은 여러 모로 대조적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은 1987년 블랙먼데이가 세계 경제를 덮치자 5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금융 시장의 동요를 진정시켰다. 그는 미국 경제가 정보기술(IT) 산업의 발달로 새로운 성장국면에 접어들었다며 '뉴 이코노미'를 주창했다. 주가 하락 국면에서 투자자를 보호하는 풋옵션을 빗댄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라는 말이 이때 나온 것이다. 미국은 일부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당시 세계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자처하며 최악의 경기 불황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도 지난해부터 5차례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영 딴판이다. 무엇보다 연준처럼 독립적이고 신뢰할 만한 중앙은행이 없는데다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는 걸출한 인물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설픈 시장경제에 자부심을 갖던 중국 지도부로서는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주요2개국(G2)의 위상이 단순히 국내총생산(GDP)이나 군사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듯하다.



최근 글로벌 금융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중국발 위기는 과거에 비해 훨씬 복합적이고 파장도 클 수밖에 없다. 지난 7년간 미국 등 선진국들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촉발된 증시 활황이 실물경제에서 받쳐주지 않는다면 10년·20년씩 이어지기 힘든 법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나 통화 정책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바닥났다는 점도 우려할 만하다. 이렇게 되면 각국의 기초체력에 따른 경제력 우열이 다시 한 번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다. 궁지에 몰린 투자자들은 오는 9월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미국의 역할론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세계가 또다시 G2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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