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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女선배들이 가르쳐 준 것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인간이라 했던가.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말 어려울 때마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여자 선배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운이 억세게 좋았던 탓인지 주변에 좋은 선배들이 있었고 그들은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곁에서 조언을 해주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거의 이십년 전, 작은 대행사에서 일하다가 카피라이터로 자질이 없다고 판단해 사표를 쓰고 대학원 입학을 생각하던 시절(대학원 또한 별 생각 없는 결정이었다), 그때 오다가다 알게 된 여자선배가 현대그룹에서 카피라이터를 공채한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물론 여자는 뽑지 않는다고 했지만 밑지는 셈치고 한번 원서를 넣어보라는 조언을 해줬다. 또 카피라이터라는 것이 일년 해보고 ‘난 아니야!’라고 쉽게 판단할 직종은 아니라는 충고도 곁들였다. 선배들 중에는 처음에는 아니던 사람들이 나날이 커가는 사람이 많다며 적어도 카피라이터를 한다고 하려면 10년은 돼야 한다는 말도 덧붙여줬다. 재능과 실력 없음에 좌절하고 있던 나에게 그 선배의 말은 무척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졌고 좌절 속에 있었던 나에게 희망의 등불이 됐다. 어쨌거나 그 선배 덕에 그해 나는 남자를 포함해 거의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여자를 안 뽑을 거라던 그 회사의 카피라이터가 됐다. 그녀의 충고와 조언이 아니라면 이 무모한 도전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 어찌어찌 직장인으로서 비교적 커리어 관리가 잘됐던 나는 제일기획에서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자리하게 됐고 광고계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이 됐다. 이어 인터넷의 붐이 일고 인터넷과는 상관없이 살려던 생각과는 달리 여성 문제에 대한 해결을 꿈꿀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마침내 여성 포털을 만들고 안주인 역할을 하게 됐다. ‘선영아 사랑해’로 유명해진 여성 포털 마이클럽은 이땅의 여자의 삶을 업그레이드시킨다는 사명감으로 내 인생의 좌표와 잘 맞아 떨어진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기쁜 일도 닷컴의 몰락과 함께 머니 게임의 절대강자의 힘에 의해 좌절됐다. 돈과는 상관없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기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 만큼 의미 있는 일이었던 여성 포털에서 나온 나는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선택 때문에 헷갈려 했었다. 대기업의 임원 제의와 화장품회사의 사장, 그밖에 이런저런 제안들…. 아무리 솔깃한 제안이라도 큰 망치에 맞은 듯한 내게는 헷갈리고 겁나기만 했다. 사람이 두려워지고 머니게임이 징그러워졌다. 이때 선배 격인 한 기업의 여사장이 잘못된 선택의 기로에 있는 나에게 조목조목 따져가며 나의 앞길에 대해 컨설팅을 하고 나섰다. 사람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고 또 40이 되면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여성 포털도 내 자신과 잘 맞아떨어졌기에 잘할 수 있지 않았냐며 이제 다시는 어떤 식으로도 머니게임의 희생자가 되거나 누구에게 고용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여자이기에 더욱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성 위주의 이런 구조에서 이용당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하고 그것에 매진하라는 그녀의 조언은 눈물겹도록 진지했다. (잘못된 선택에 아파할 후배를 생각해준 이 선배는 지금도 내 곁에서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다.) 그때 이 선배 덕분에 나는 작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 마케팅 컨설팅회사인 자연인을 하게 됐고 5년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친환경제품인 유기농화장품 로고나를 맡게 됐다. 또 자연인을 하게 됐을 때 마케팅 컨설팅이라는 다소 애매한(?) 분야에 뛰어든 나는 선배들의 격려와 열정으로 좋은 일을 많이 맡게 됐고 나름대로의 성과물들을 갖게 됐다. 그중에 중견 출판사를 운영하는 선배는 컨설팅할 좋은 사람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평생을 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을 해보라는 충고가 로고나를 맡게 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아직은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나를 도와준 이 선배들을 포함한 지인들이 없었다면 별게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가 가능했을까. 조용한 시간이 나면 가끔 너무나 감사한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 나 또한 그들처럼 후배들에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것이 그들에게 진 빚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여자이기에 여자의 사회 생활을 이해하고 멘토로서 나를 이끌어준 그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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