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한국 주식시장은 금융 쓰나미가 스쳐 지나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큰 충격에 휩싸였다. 코스피지수는 938.75포인트로 마감해 2005년 6월 이전 수준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지난해 말 사상 최고치(2,064.85포인트) 대비 54.5% 하락한 셈이다. 이 같은 단기 하락률은 외환보유액이 거의 바닥에 이르러 국가 부도위기에 몰리고 30대 그룹 중 17개가 무너졌으며 26개 은행 중 겨우 10여개만이 생존하가 하면 실물경제 성장도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IMF 외환위기 때의 주가하락률에 근접하고 있다. 미국에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금융위기가 세계금융시장으로 확산되고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각국 주식시장은 비슷한 현상을 보여 우리 시장만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위기의 진원지에서보다 더 민감한 반응은 큰 손실을 안겨줄 뿐이다. IMF 때보다 외환보유액도 충분하고 기업들의 부채비율도 당시 400% 전후에서 거의 100% 전후로 떨어졌으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는 있지만 마이너스 성장까지 이르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 시장은 과민반응을 보일까. 이 악순환이 언제까지,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한 점은 지나친 과민반응이 현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IMF 당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6에서 0.8배 수준이었는데 현재 이미 우리의 PBR는 0.7배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금융위기에 냉정을 잃고 허둥대는 우리 행동에서 합리적인 가정에 기초한 경제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아직 실물경제 자체가 완전 침체기에 빠진 것도 아니고 각국 정부가 최악의 사태를 막겠다고 나서는데도 시장의 동요는 멈추지 않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들의 경우 자국시장에서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수 수준에 관계없이 매도하는 현상황이 이해될 수 있지만 국내투자자, 특히 개인투자자들이 지난 금요일에 보인 투자행태는 공포감에 기인한 과잉반응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언론이 표현했듯이 근거 없는 부도설 등 괴담 수준의 얘기들이 확산되면서 공포감이 지수 1,000선을 무너뜨린 것으로 보인다. 일부 외국 언론과 경제학자들도 한국이 충분히 이 경제위기를 해쳐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한국이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로 1997년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지만 당시처럼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한 해외 언론도 있다. 1배럴에 140달러대까지 치솟아 우리 경제를 압박했던 유가는 60~70달러대로 떨어져 부담을 많이 덜어줬고 환율상승으로 올해 4ㆍ4분기 경상수지는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되며, 동전의 양면이지만 환율상승으로 수출 대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수도 있어 우리 경제에 밝은 빛이 보이고 있다. 이런 불안한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정책당국의 철저한 사태분석에 근거한 일관된 언행이며 정책당국 간 협조로 적기에 신속하고 충분하게 대책을 집행하는 일이다. 우선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한국은행은 지나친 형식논리에 집착하지 말고 ’열병’에 걸린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신속하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일제히 금리를 내리고 금융기관에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미국 FRB는 은행은 물론 자금난에 몰린 기업들의 어음까지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고 미국 FRB의 독립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세계 역사는 수 차례의 전쟁과 공황 등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붕괴된 적이 없다. 이번 위기를 맞아 그 어느 때보다 각국이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지만 이 위기를 이기고 다시금 세계경제는 정상궤도에 진입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반도체ㆍ철강ㆍ조선ㆍ자동차 등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산업 포트폴리오를 가져 국제 투자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10년 전 IMF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던 소중한 경험도 지니고 있다. 10년 전에 비하면 지금 국내 여건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투자자들은 지나친 공포심에 따른 과민반응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성으로는 비관하더라도 의지로서의 낙관은 놓치지 말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약력=▦1950년 ▦서울대 경영학과(1974) ▦미국 조지아대학원 경영학석사ㆍ박사(1982)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1982년~현재) ▦한국증권학회 회장(2001~2002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2002~2003년) ▦한국금융학회 회장(2003~2004년) ▦대통령자문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2005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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