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술정보자원을 국가 차원에서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는 21세기 지식정보사회의 신식민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곽동철(57ㆍ사진)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장)는 최근 "세계의 학술정보자원을 좌지우지하는 선진국들이 학술정보자원을 무기화하고 있다"며 정보자원의 종속화를 우려했다.
학술정보자원은 연구개발에 필요한 저널ㆍ학위논문 등을 포괄하며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등 분야별로 수만종이 넘는다. 세계적인 강국인 네델란드ㆍ미국 등 2개국이 글로벌 학술정보자원의 저작권 80% 이상을 쥐고 있다.
그는 "학술정보시장을 독식하는 네델란드의 출판사 엘시비어, 미국의 프로퀘스트 등이 2000년대 들어 파격적인 값에 전자저널 구독을 권하자 우리 대학 도서관들은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종이저널 구독을 중단하고 전자저널(e-journal)로 전환해왔다"며 "국내의 e저널 판매율이 늘어나자 출판사들은 지난 2005년 이후부터 구독료를 매년 10배씩 올리기 시작했다. 백업장치인 종이저널 구독을 중단했기 때문에 마지막 보루가 된 전자저널에 대한 이들의 일방적인 조건을 우리가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 근대적 의미의 대학이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지만 우리 대학 도서관의 평균 예산은 미국 대학의 10%를 밑돌고 있다. 특히 지방대학 도서관은 서울의 대학 예산의 3분의1 정도에 그쳐 지역 간 학술정보의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또 연구자들의 연구활동시간 중 40%를 자료 구입에 쓰는데 국내 연구자들은 빈약한 학술정보로 외국의 인맥을 동원해 자료를 구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5년 주요 대학들이 특정 분야의 학술저널을 종이로 구독하도록 하고 국내 전 대학과 연구소에 실비로 제공하는 '외국 학술지 지원센터'사업을 정부에 제안, 실현시켰다. 첫 테이프는 경북대가 끊었다. 매칭펀드 형식인 이 사업을 통해 2006년 경북대가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원으로 세계에서 출간되는 전기ㆍ전자ㆍ정보통신 관련 학술저널의 대부분을 구입해 제공하기 시작했다. 곽 교수는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등이 적은 비용으로 학술정보를 자국의 연구원들에게 제공했던 이 같은 분담수서(shared acquisition)사업은 미국 과학기술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며 "정부가 연구투자비를 프로젝트 단위로 지원하면 수혜가 소수 연구자에게만 돌아가지만 분담수서사업은 연구정보라는 공공 인프라가 구축돼 전국의 연구자들 모두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효과는 의외로 컸다. 2009년을 기준으로 외국 학술지 지원센터의 활용률이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교과부도 힘을 얻어 사업을 점차 확대해나가 현재 연세대(임상의학), 서울대(자연과학), 고려대(인문과학), 전북대(농ㆍ축산), 부산대(기술과학), 경북대(전기ㆍ전자ㆍ정보통신), 생명공학(강원대) 등 7개 대학이 참가했다.
교과부는 외국 학술지 지원센터와 아울러 2003년부터 추진해온 외국학술 데이터베이스(DB)의 국가라이선스구매(공동구매)를 묶어 '외국학술자원 공동활용사업'이라고 정하고 예산 배정 항목을 정보화시설비에서 연구개발비로 전환, 적극 지원에 나섰다. 곽 교수는 "정부가 예산 항목을 연구개발비로 바꾼 것은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며 "이 같은 사업을 통해 매년 900억원 이상의 예산 절감효과를 얻은 만큼 정부가 한발 더 나아가 사회과학ㆍ예술 등 분야를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2등 상품은 팔리지 않는 시대다. 1등 상품은 창의적인 연구개발에서 나오는데 이에 필요한 지식의 저수지가 바로 도서관"이라며 "가뭄에 저수지가 타들어가는데 어떻게 풍년 농사를 기대하겠는가. 세계적인 대학과 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