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디지털포럼에 연사로 초청된 브라질 기계공 알프레드 모저는 어두운 강단에 서자마자 페트병으로 만든 전구를 켰다. 현장은 순식간에 빛으로 가득했다. 모저램프라 불리는 이것은 페트병에 담긴 물의 굴절을 이용해 발명했다. 이 램프는 전 세계 빈민촌에 사는 수백만 명의 주민들에게 희망의 빛이 됐다. 기술을 나눠줬지만 동시에 희망도 나눠준 셈이다.
우리나라도 '빛과 희망나눔'이라는 단체가 파키스탄·네팔 등에 태양광 LED조명기기 등을 나눠주는 일을 한다. ETRI도 함께 했다. ETRI는 또 최근 KOTRA와 협약을 맺고 쓰지 않거나 사용도가 낮은 연구개발(R&D) 장비를 개도국에 이전키로 했다. 1차로 초음파 측정기와 무선 네트워크 분석기, 주파수 카운터 등 11점을 미얀마의 정보통신 분야 연구기관에 지원했다. 장비를 이전할 때 퇴직·청년 인력도 같이 파견해 현지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상생 협력을 넓혀나갈 방침이다.
이런 기술들은 난이도나 속성으로 볼 때 첨단기술은 아니다. 기술의 적용성을 강조한 적정기술, 요즘 말로 '착한 기술'인 경우가 많다. 최근 조사에서 '대한민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내·외국인 모두 '대기업'을 꼽았다고 한다. 가장 경쟁력 높은 우리 문화로는 '디지털 문화'를 꼽았다. 이 둘의 배경에는 한국의 뛰어난 정보통신기술(ICT)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착한 기술에 대한 관심도는 과연 몇 점이나 될까. 결론은 점수가 결코 높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바뀐 세계 첫 사례로 기록됐다. 최근에는 '상호 협력적 혁신', 즉 '개방형 혁신'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더 짧아진 기술수명 주기, 기하급수적인 R&D 비용 증가, 와해성 기술의 파괴력 확산 등에 따른 리스크가 커지면서 공동연구와 같은 물리적 협업이 중요해진 것이다.
특히 국제 공동연구 사업을 통한 개방형 혁신은 불확실한 기술과 시장에 대한 대응 리스크를 감소시켜준다. 미래 이슈 해결을 위한 효율적 방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제 공동연구는 미국· 독일·일본과 같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세 나라의 비중이 전체 62개국의 절반이 넘는 53%나 된다. 이 또한 착한 기술, 포용적 적정기술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가 낮다는 증거 중 하나다.
철저하게 일류를 지향해온 대한민국의 ICT는 여전히 세계시장을 주도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주체로서 개도국의 역량이 급속하게 강화되고 있고 과학기술 협력의 성격이 해외 직접 투자처럼 양쪽의 수요와 입장을 함께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국가 성장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미래 글로벌 사회 리더십 확보를 위한 ICT를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개도국과의 과학기술 협력, 특히 사회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ICT 협력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선진국 일변도의 협력 관계에서 탈피해 개도국이 필요로 하는 기술협력 등 호혜적 과학기술 협력을 적극 확대해나가야 한다.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에는 남을 먼저 배려하고 생각하는 이타정신과 인류공영의 중요성이 내포돼 있다. 인류존엄의 보편적 가치로 세계인에 널리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만드는 정신을 이어받아 개발도상국을 적극 지원하고 우리 스스로도 성장할 수 있는 글로벌 상생 협력의 기반을 다져 나가야 한다.
/김흥남 ETRI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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