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이탈이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능가하는 파장을 몰고올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전세계 금융 당국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 위기가 스페인 등 다른 유럽 국가들로 번지며 글로벌 은행 시스템을 위협하기 시작하자 각국 금융 당국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국경을 뛰어넘는 비상대책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21일 외신들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의 주민 부총재는 지난주 워싱턴에서 IMF의 새 분석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세계 경제가 어느 때보다 밀접하게 연계돼 위기가 이전보다 더 빠르게 전이될 수 있다"며 앞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그 충격이 리먼 사태보다 더 심각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스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의 확산과 스페인 은행권의 부실대출 급증 등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남유럽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한 가운데 나온 IMF의 이 같은 경고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기와 맞물려 세계 금융시장을 긴장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은행예금의 국외 유출 금지 조치가 내려질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며 "이 경우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재정이 취약한 국가에서 사전에 예금을 해외로 빼돌려두기 위한 뱅크런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여기에 유로존 경기침체의 여파까지 더해지면 가뜩이나 취약한 금융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동성 공급으로 버텨온 은행 시스템이 마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유동성이 위축되고 은행권의 대출 담보인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자칫 1997년 일본의 금융기관 연쇄부도나 2008년 리먼 사태처럼 금융 시스템이 마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유럽 재정위기가 금융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관적 시나리오가 부상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비하는 각국 정부의 행보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과 영국이 7개 초대형 다국적 은행이 무너지는 사태에 대비해 사상 처음으로 공동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이날 전했다. FT에 따르면 미국의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와 영국 중앙은행, 영국 금융청(FSA)이 주도하는 이 논의는 유사시 당국 주도하에 주주와 채권단이 손실을 분담하면서 은행의 핵심 업무는 지속되도록 하는 '톱다운 손실분담'을 골자로 하고 있다.
FT는 이 프로젝트의 대상이 '시스템상 중요한 금융기관(G-Sifis)'에 포함된 미국 은행 가운데 영국을 통해 해외사업의 85~90%를 영위하는 5개 은행과 이들의 영국 파트너로 미국 사업 비중이 높은 2개 영국 은행이라고 설명하면서 골드만삭스와 JP모건체이스ㆍ바클레이스 등을 거명했다.
유럽연합(EU) 내부에서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그에 따른 공동 대응안 마련이 점점 시급한 현실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주요8개국(G8) 정상회의를 마친 후인 지난 20일 미 시카고에서 그리스의 다음달 2차 총선은 유로존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에 대비한 비상대책을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 위기의 분수령이 될 그리스 2차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은행예금보장 공동 시스템 창설, 유로본드 창설 등 유럽 정사들이 유로존 안정을 위해 거론됐던 해묵은 과제들이 속속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FT 등 외신은 EU 지도자들이 23일 열리는 특별 정상회의에서 유로존 회원국의 공동채권인 유로본드 발행문제와 유럽 구제기금 강화안 등 재정위기 확산 방지를 위한 대응안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특히 유로본드 발행은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제안해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총리와 스페인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 등이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반대 입장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설득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EU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당장 실현될 수 있는 안은 아니지만 올랑드 대통령이 제안을 하면 다른 정상들도 지지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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