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기업들이 경영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현금보유 규모를 크게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경기방향을 예측하기 힘들고 기업들도 보수적인 경영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경기회복이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보유현금 증가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3ㆍ4분기 현금과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현금 자산은 30조3,400억원으로 석 달 전보다 무려 6조5,400억원이나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현금성자산이 30조를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ㆍ4분기에 현금성 자산규모를 1조6,000억원 가까이 줄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순현금 역시 15조원으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현대차의 현금자산도 전 분기보다 3조4,450억원 증가한 18조8,590억원으로 늘었고 LG전자도 석 달 전에 비해 5,406억원 증가한 2조6,619억원으로 현금을 불렸다. 3ㆍ4분기 부진한 실적을 발표했던 포스코 역시 8조7,100억원으로 3,000억원 이상 늘렸다.
유동성 확보를 위한 차입금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실제로 현재차의 3ㆍ4분기 차입금은 전 분기보다 1조2,350억원이나 늘었고 삼성전자는 9,300억원, LG전자도 1,684억원을 늘렸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기업들도 불확실성에 대비한 보수 경영에 들어가면서 보유 현금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요 기업들의 현금보유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이는 앞으로 있을 불확실성에 대비해 현금을 비축해 놓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원재 SK증권 연구원도 "포스코 같은 경우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실적도 좋지 않아 재무구조 개선에 온 힘을 쏟고 있다"며 "경기 상황이 불확실한 만큼 조금이라도 현금을 더 늘려 안전한 경영을 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 연말 주요국들의 정권교체 등 정치이벤트로 기업 경영이 불확실해질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의 현금 수요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연말 국내 대선과 중국지도부 교체 등 굵직한 정치이슈들이 산재해 있고 특히 미국의 경우 대선 결과에 따라 글로벌 경제정책의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위험회피에 나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김주형 동양증권 투자전략 팀장은 "지금까지의 대외여건을 고려할 때 기업들이 현금자산을 쌓을 이유는 충분하다"며 "정치이벤트에 따라 경제정책이 바뀌기 때문에 기업들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김 팀장은 "바뀌는 경제정책에 따라 투자계획과 투자규모도 바뀌는 만큼 경기가 회복되기 전까지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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