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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원전 신뢰 갉아먹는 한수원


원자력발전소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 8곳이 외국 기관에서 발급하는 품질보증서를 위조해 지난 10년 동안 237개 품목에 이르는 미검증 부품을 공급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미검증 부품의 98.2%는 영광 5ㆍ6호기에, 나머지는 영광 3ㆍ4호기와 울진 3호기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영광원전 2기를 올해 말까지 가동 정지하고 부품 교체, 전반적인 안전성 검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정부가 "원전의 안전성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원전에 사용되는 부품은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된다.

조직문화ㆍ품질관리 전반에 메스를

이번 품질보증서 위조 원전부품 납품 사실은 외부 제보로 밝혀지게 됐다. 만에 하나 검찰 수사와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 한수원 자체 감사 등을 통해 한수원 직원의 비리 문제로 비화될 경우 원전 운영에 대한 근본적 재조명도 불가피해 보인다. 설사 비리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더라도 한수원은 미검증 부품을 구매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전은 그 특성상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수원의 품질검사 체계, 자격업체 관리를 전면 재정비키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품질보증서 위조라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한수원ㆍ검증기관 간 정보 교류를 체계화하고 구매ㆍ납품점검 절차를 전면 재검토하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한수원의 품질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해 과감한 메스를 가하고 자체 품질검증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국내 인증ㆍ시험기관 활용 등 일반규격품 품질검증제도 역시 총체적인 정비가 요구된다.

한수원이 조직문화 혁신 차원에서 모든 부문에 걸쳐 강도 높은 개혁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장이 전면에 서서 구호 몇 번 외친다고 조직문화가 쉽게 달라지기는 어렵다. 최근 일련의 사태가 모두 외부 제보에 의해 이뤄진 점을 상기하고 자체 점검 시스템 개혁, 제3의 검증 시스템 도입 등 강력한 개혁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재발방지대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전력 수요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 겨울 전력 수급 문제다. 발전소들이 정상 가동되도 안심하기 어려운 동계 전력피크를 앞두고 원전 2기가 가동 중단됨으로써 일부 지역의 정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지경부는 지난달 29일 67만9,000㎾급 월성 1호기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이번에 영광 원전 2기(100만㎾급)의 가동을 중단해 올 겨울 전력 공급능력은 260만㎾ 이상 감소가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11~12월 예비전력은 당초 예상치인 275만∼540만㎾에 크게 못 미치는 200만㎾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영광 5ㆍ6호기의 재가동이 늦어질 경우 내년 1월 혹한기 예비전력은 위험 수준인 30만㎾로 급락할 수 있다. 예비율이 100만㎾ 이하로 내려가면 순환정전 상황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안전에 최우선… 뿌리부터 혁신해야

혹한기 전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서민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왜곡된 에너지 가격 구조로 인해 다른 난방기구들은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의 서민들이 전기 난방기구로 겨울을 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전력 수급 측면에서 영광 5ㆍ6호기의 가동 정지에 따른 부담이 매우 크지만 안전이 최우선인 원전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결정으로 판단된다. 한수원은 어떤 고통을 치르더라도 이번 사태를 원전산업의 뿌리부터 혁신해 국민이 신뢰하는 원전 운영사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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