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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월6일] 멘델

아무도 몰랐다. 그의 논문은 35년간 도서관에서 잠잤다. 1884년 1월6일 사망한 지 16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멘델(Gregor Johann Mendel)의 위업을 깨달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멘델은 평생을 역경 속에 지냈다. 고등학교를 누이가 내준 결혼준비금과 고학으로 겨우 마쳤다. 사제의 길을 택한 것도 돈 들이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과 수학ㆍ통계학에 몰두한 빈 대학 유학도 멘델 신부의 학문적 재능을 눈 여겨본 성 토마스 수도원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수도원에 돌아온 멘델은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식물의 유전연구를 결심한다. 대상은 완두콩. 성장주기가 짧고 종자가 많으며 잘 자라 실험과 딱 들어맞았다. 7년여 실험 끝에 우성만 남고 열성은 소멸된다는 다윈의 유전 가설을 뒤집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우열과 분리, 상반교잡 등 유전학의 기본법칙이 담긴 논문 ‘식물의 잡종에 관한 실험’을 1865년 발간했지만 ‘아마추어 괴짜 신부’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46세에 수도원장에 피선된 멘델은 업무에 묻혀 더 이상의 연구를 진전하지 못한 채 1868년 62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멘델의 법칙’이 빛을 본 것은 1900년. 3명의 유명 학자가 제각기 멘델의 보고서를 재평가하면서 ‘멘델 바람’이 불었다. 시대를 앞선 천재의 업적에는 노력이 숨어 있다. 실험기간 동안 5평 남짓한 텃밭에서 완두콩을 325번 심고 갈아엎었다. 잡종만 1만2,980개를 만들어냈다. 멘델이 닦은 유전ㆍ생명공학의 2003년 세계시장 규모는 740억달러. 2013년엔 2,100억달러로 커진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 눈을 감으면서도 멘델은 ‘결국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가 옳았다. /권홍우ㆍ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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