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환경금융·CERs 전문가 키우자
녹색기후기금(GCF)은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는 신설 국제환경금융기구다. 오는 2020년부터 매년 1,000억달러의 기금이 조성된다니 중요 국제환경금융기구로 성장할 확률이 높다. 사무국 유치는 대한민국 국운에 대단한 득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GCF의 구조와 역사적 배경을 감안하면 앞으로가 걱정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돈을 지원해야 하는 선진국과 수혜자인 개발도상국은 아직도 날카로운 이해 대립을 보이고 있어 한국이 섣부르게 이 문제에 접근했다가는 두 진영 사이에서 '국제적 박쥐'가 될 수도 있다.
GCF운용 집행은 첨단지식 전쟁터
설상가상으로 세계적인 경제불황으로 기금 조성에 원칙적인 합의를 이뤘을 뿐 모금 시기와 국가 간 지원금액 분담비율 등은 아직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불투명한 장래로 인해 사무국 유치국이 솔선수범해 초기 자금을 주도적으로 조달해야 할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경쟁국이었던 독일은 물론 일찌감치 유치를 포기한 선진국 정부들은 이런 문제를 익히 알고 있었고 독일은 8월 말 열린 공식 프레젠테이션에서 '독일 정부는 이 기구를 지원하겠다'는 한 줄 설명이 달린 앙겔라 메르켈 총리 사진을 보여주고 끝냈다. 국운이 걸린 듯 올인했던 한국 정부와는 대조적이었다.
충분한 경제적 뒷받침에 전문인력 공급도 가능한 독일이 주춤했던 또 다른 이유는 유엔 청정개발체제(CDM)의 붕괴다. 독일 본에 있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집행기구(UNEB)의 경영 미숙과 제도적 결함으로 CDM 탄소배출권제도의 붕괴가 불가피해지자 집행기구의 운영본부가 있는 독일에 대한 비난이 높아졌다. CDM이 무너지는 본에 또다시 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을 설치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설득력이 떨어졌다.
2019년까지 총 600억원의 지원을 약속한 한국 정부는 GCF 사무국 유치로 인한 수지타산에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각종 국제회의와 행사가 열려 숙박ㆍ관광ㆍ교통 등 서비스산업이 증가하면 경제적 파급효과는 당연히 따라오겠지만 환경금융(Environmental Finance) 전문인력이 전혀 없는 한국에는 남의 잔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금 지원을 받으려는 개도국은 사업계획서를 사무국에 제출해야 하니 송도에 전세계의 모든 사업문서가 접수된다. 탄소배출권 등 기후변화상품은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으로 형성되고 거래되므로 사업계획서 등을 평가하려면 첨단 환경 프로젝트파이낸싱에 대한 지식ㆍ경험을 가진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기후변화를 미래 성장 틈새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JP모건이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업체였던 영국의 에코씨큐러티즈사를 도이치증권과 힘겨운 다툼 끝에 적대적 인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후변화기금 운용과 할당 그리고 집행에 엄청난 첨단 지식전쟁이 벌어질 것이 쉽게 예상된다.
미적거리다간 월가 등 잔치판 될 수도
문제는 지식전쟁을 준비하는 우리의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GCF 사무국과 관련 산업에 근무할 한국인 전문인력 양성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기후변화협상ㆍ탄소배출권(CERs)거래ㆍ환경금융 전문가와 환경법률가 양성이 시급하다. 한국 정부에 세금 한 푼 안내는 외국인만 오가는 GCF는 곧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고 사무국 유치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마닐라에 있지만 필리핀이 이 기구로부터 얼마나 실질적인 이익을 얻어내고 있을까. ADB 전문직원들의 국적과 배경을 보면 답이 나온다.
백광열 SIG클린에너지투자 고문·인도네시아 상원 기후변화정책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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