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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마초이즘과 대통령의 눈물

이용웅<정치부장>

“내 마누라가 한국 드라마를 매일 밤 보고있는데 전부 슬픈 것들이야. 모든 장면에서 누군가 울고 있고 연기는 기생오라비같고 두어개의 노래를 줄창 흘리고 있어. 얘들아! 내가 손목이라도 그어야 하냐? 목을 매야 하냐?” “내 마누라도 그래. 나는 귀마개를 끼고 헤드폰을 볼륨 만땅으로 올려서 쓰고 있어.” “썩을 놈의 한국 드라마는 눈물을 짜내는 양만큼 남자 배우들에게 돈을 주냐? 이놈들을 아프리카(물이 부족한 지역)로 데려가면 아무리 큰 저수지라도 한나절에 채우고도 남을 놈들이더라.” “이봐! 한국 남자들이 원래 호모같아! 한국 드라마를 보면 나는 누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별할 수가 없다니까.”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일본에 거주하는 서양인 네티즌(주로 미국인)들이 한국 드라마 붐을 두고 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내뱉는 푸념들이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마주한 대목인데 흥미롭기 그지없다. 요즘 ‘배용준, 욘사마’를 필두로 일본에서의 ‘한류’(韓流)’ 붐이 점입가경이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대목은 배용준 등 한국 남자 배우들이 일본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눈물’이라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잊어버린 순애보’ ‘인간미 넘치고 눈물이 많은 얼짱 남자 배우들’이 일본 내 한국 드라마 붐의 가장 속 깊은 원인이라는 분석은 이제 지겨울 만큼 많이도 나왔다. 그러고 보니 배용준은 드라마에서는 물론이고 일본 팬들과의 만남에서도 간간이 감동의 눈물을 보여줬다. 이를 본 일본의 중년 여성 팬들은 ‘욘사마’의 매력에 더욱 빨려들어가는 것 같고. 바로 이 때문에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백인들이 한국 드라마의 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앵글로색슨 계열의 서양문화는 ‘마초이즘’의 진원지 아니었던가.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수치로 아는 그들의 영화를 보면 과연 남자 배우들이 울고 짜고 하는 대목은 참으로 찾기 힘들다. 액션배우 부르스 윌리스가 ‘아마겟돈’에서 눈물연기를 처음 했다는 게 화제기사가 될 정도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에서 남자 배우들은 ‘이슬 같은 눈물’은 물론이고 거의 ‘통곡’을 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대중문화에서 ‘마초이즘’은 서양의 그것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긴 칼, 짧은 칼 두 자루씩 들고 다니는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사람의 몸을 마치 무처럼 썰어대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배도 가르는 것을 남성다움으로 치켜세웠고 패전한 무사의 아내들에게는 입에 칼을 입에 물고 자진하라고 윽박질렀다. 따뜻하고 눈물도 많은 한국 남성들이 그래서 일본 여자들의 마음을 얻은 것일까. 그러고 보니 노무현 대통령도 눈물이 많다. TV에 출연해 과거의 고생담을 이야기할 때도 눈물을 보였고 자이툰 부대를 전격 방문했을 때도 눈물을 훔쳤다. ‘마초이즘’이 지배하는 것 같은 국회에서도 얼마 전 이철우 의원이 고문당했던 고백이 흘러나오자 많은 의원들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왜 한국의 남성 배우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대통령도 눈물이 많을까. 아직도 우리나라는 한(恨)의 정서가 깊고 설움도 많다는 이야기인가. 경제가 어렵다 보니 정말 눈물 없이는 넘길 수 없는 사연들도 부쩍 많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는 2005년은 나라를 빼앗긴 을사보호조약 100주년이자, 광복 60주년이다. 격동기를 맞아 힘을 내세운 ‘마초이즘’이 그 어느 때보다 득세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 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계속 나올 것이고 우리가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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