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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이쾌대 : 해방의 대서사'전, '월북'에 가려진 예술혼… 이쾌대를 말하다

중국 화풍·일제 영향 벗어나 한국적 색감 서양화 추구

미공개 드로잉·편지공개

인간적 면모 엿볼수 있는 제자들 인터뷰 영상도 관심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찾은 한 관람객이 이쾌대의 ''군상Ⅲ''을 지나치고 있다. /=연합뉴스


"작가 이쾌대(사진)는 '월북작가' '한국 리얼리즘' 측면에서 주로 조명됐지만, 모던하고 서정적인 화풍도 있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그는 옛 중국 화풍과 일제의 영향을 벗어나 한국화된 서양화를 추구했다. 얇게 칠한 캔버스 바탕에 가는 필선과 음영 표현, 거친 질감이면서도 한국적인 색감과 조화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로 이 작가가 편견 없이 재평가되고, 새로 발굴한 아카이브를 통한 진지한 연구가 이어졌으면 한다." (김예진 학예연구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20세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쾌대(1913~1965)의 대규모 회고전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를 11월 1일까지 연다.

시기별 3개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에는 그의 대표적인 유화 40여 점과 드로잉 150여 점을 비롯해 그가 그린 잡지 표지와 삽화, 편지 등 관련 자료까지 총 400여 점이 선보인다.

1913년 경북 칠곡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쾌대는 서울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갓 결혼한 아내 유갑봉과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다.

이번 회고전의 첫 섹션 '사랑을 그리다(1929~1937)'가 이 시기다. 그는 유학기간 그의 '뮤즈'였던 아내를 모델로 한 그림을 수없이 그렸다. 그림 '카드놀이 하는 부부'(1930)처럼 전통적이던 여인상은 점차 운명을 개척하는 강인한 인상으로 바뀐다.



졸업하던 해인 1938년 작가는 일본의 유명 전람회 '니카텐'에서 작품 '운명'으로 입선하고, 귀국 후엔 이중섭·최재덕 등 일본 유학파 화가들과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해 활동한다. 초기 어두웠던 그림에 점차 과감한 색면 처리와 밝은 색채, 검은 필선 등 새로운 시도를 더해지는 것을 두 번째 섹션 '전통을 탐구하다(1938~1944)'에서 볼 수 있다. 앞서 '운명'(1938)과 '자화상Ⅱ'(1942),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1940) 등을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그는 해방 이후 '군상Ⅰ-해방고지'(1948) 같은 대작으로 주목받았지만 곧 한국전쟁이 터진다. 미처 피난 가지 못한 그는 북한군의 선전미술 제작에 가담하게 되고, 이후 국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월북했다. 이 짧은 전성기가 마지막 섹션 '시대를 끌어안다(1945~1953)'에 드러난다.이번 전시는 개인소장가나 미술관의 작품도 있지만, 주로 유족의 소장품으로 구성됐다. 특히 창고에 있던 드로잉 총 400여 점을 분류하고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 의미가 크다.

또 1991년 신세계미술관의 '월북작가 이쾌대'전을 위해 작품이 복원되며 변화가 심했거나 잘못 포함된 타 작가 작품 등 20여 점을 제외한 반면, '군상' 시리즈 4점을 포함해 대표작은 빠짐없이 포함시켜 전시의 완성도를 높였다. 제자인 김창열, 심죽자, 김숙진, 전뢰진 등의 인터뷰 영상도 함께 전시돼 이쾌대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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