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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중기대출, 은행 하나도 안변했다
입력1998-11-03 00:00:00
수정
1998.11.03 00:00:00
최근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으나 중소기업들에게 은행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무리한 담보요구, 무분별한 대출금상환요구, 구속성예금강요 등 전근대적인 대출관행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특히 담보부동산의 100% 여신제공, 예대상계, 대출자격완화등 정부의 중소기업지원시책에 대해 은행들은 공문을 보내 시늉만 내고 있을 뿐 일선 은행창구에선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들은 금융기관들의 대출관행이 변하지 않는 한 어떤 지원시책도 소용이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하루빨리 금융권구조조정을 마무리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중소기업지원시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경기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중소기업신용경색현상을 현장위주로 긴급점검해 본다.
◇고압적인 자세 여전= 첨단 산업용 재료를 개발 생산하고 있는 D사의 L사장은 주거래은행인 J은행이 대출금 회수를 강요해 진행중인 개발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L사장은 『J은행과 30년동안이나 거래해 와 돈독한 신용을 쌓아놨고, 지난해 의 경우도 100억원씩이나 상환했는데 은행측은 자신들의 처지를 고려해 달라며 회수일변도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월공단의 유망 중소기업인 M업체는 올초부터 계속 신규 자금이 목마르다. 그러나 담보및 보증한도가 다 차버려 더 이상의 대출을 못 받고 있다. 현재 6억~9억원의 운전자금이 필요한데 거래은행에서 규정을 들어 신규여신을 거절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기술신보로부터 기술력 평가로 보증서를 받아 대출을 받았지만 지금은 보증한도가 다 차버려 긴급자금을 융통하기 힘들다. 대개 전년도 매출액의 1/3선에서 보증한도가 결정되는데 지난해 매출감소로 오히려 한도가 줄었다. 추가담보가 없는 상황에서 기댈 곳은 보증기관이지만 한도규정에 막혀 보증서를 못끊고 있는 것이다.
퇴출은행과 거래하던 D기업은 요즘 주거래은행을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더이상 한도축소등 인수은행측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K사장은 『최근 인수은행측으로부터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고 금리를 낮춰준다는 공문을 받았지만 전시효과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자기들 기준에 안맞으면 신규대출을 못받는 것은 물론 여전히 대출회수조치를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담보대출관행은 요지부동= 오수관(吳壽寬)중앙텔레콤 사장은 최근 중소기업은행이 감정가액 7억원인 건물의 담보가치를 2억원으로 산정하고 추가담보를 요구하는 바람에 정부정책자금 2억9,000만원을 배정받고도 대출받지 못하고 있다. 吳사장은 『중소기업대출이 가장 많은 중소기업은행이 이 정도』라고 말하고 『은행들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계는 정부가 각종 중소기업 지원책을 발표하고 대출기준금리(프라임레이트)를 한자릿수까지 떨어뜨리는 등 중기지원을 독려해도 은행의 전근대적 대출관행이 지속됨에 따라 중기대출은 늘기는 커녕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가정용 도어록을 생산하고 있는 S사 P사장은 몇달전까지만 해도 은행문턱을 넘나들며 대출에 안간힘을 썼으나 까다로운 서류요구와 담보제공요구앞에서 그대로 물러날수 밖에 없었다. 이후 아예 은행 대출의 희망을 버린상태다.
배관재를 생산하는 A사는 M사장은 정부의 대출협조요청사실에 대해 『정작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은행들의 뿌리깊은 담보요구관행』이라며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담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출액산정기준을 담보로만 고집하는 상황이 계속되는한 중소기업살리기는 헛된 구호로 그칠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쇄기기업체인 T사의 C사장의 경우에는 아예 포기한 상태. 지난해 정부에서 우선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기술개발자금 4억원을 대출받으면서 1억5,000만원짜리 땅과 시가 4억5 ,000만원대의 아파트를 담보로 잡혔다. 감정가는 아파트가 시세보다 무려 30%나 낮은 수준. 대출받을 때 성의표시를 하라고 해서 이전에 은행에 들어놓았던 5,000만원, 2,000만원짜리 적금을 꺾기용으로 대체했다. C사장은 『얼마전에 1,000만원정도가 필요해 은행에 문의해 보았더니 신용으로는 불가능하고 추가담보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담보가액 산정= 조명제어장치 업체인 M산업 Y사장은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시설투자를 늘리기위해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기로 결심했다. 은감원이 최근 부동산 담보물에 대해서는 정부 공시지가이상으로 감정하고 감정가액의 100%까지 여신을 해준다는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었다. 하지만 은행문을 들어서자 분위기는 영 딴판이었다. 『저희뿐 아니라 어떤 은행도 공시지가의 100%여신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전대로 감정가의 70%선에서 대출받으시죠.』라는 창구직원의 매서운 한마디는 「정책따로 실무따로」의 전형이었다.
Y사장은 은감원이 일선 은행창구에 여신심사기준을 완화해 신용상태가 다소 떨어지는 중소업체에 대해서도 자금지원에 나서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이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용조사기술이 떨어지는 각 은행은 이전과 다름없이 신용보증서를 요구할 것이고 신용보증기금은 자나깨나 담보유무를 기준으로 보증서를 발급할 께 뻔하기 때문이다.
◇여신기준완화 말로만= 다중커넥터를 생산하는 H산업은 최근 시제품개발을 완료하고 본격 내수판매에 나섰다. 대지 420평규모의 공장을 담보로 은행권으로부터 1억7,000만원을 대출받아 상품화에 돌입했다. 하지만 추가자금이 없어 생산라인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은행감독원이 27일 「중소기업지원강화방안」을 마련, 영세업체까지 자금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K사장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은행 여신담당자들은 부실대출에 대한 책임추궁이 무서워 우량기업만 선별해 대출세일에 나서고 있습니다. C등급의 중소기업도 선택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D급의 여신억제대상업체에 신규대출한다는 것은 헛구호에 불과합니다』K사장은 신규업체로서 은행등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잘라 말한다.
◇예대상계 중소기업엔 그림의 떡= 플라스틱업체인 K사에서 자금을 담담하고 있는 C이사는 최근 정부에서 담보부동산을 100%까지 인정해 주고 구속성예금(일명 꺾기)과 대출금을 상쇄하는 예대상계를 실시하겠다는 발표를 듣고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은행을 찾아갔다. 이회사는 지난해 모은행에서 시설자금으로 70억원을 대출받을 때 시가 100억원대의 부동산을 담보로 잡혔고 이외에 10억원짜리 정기적금도 들어있는 상태. 정부의 발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현재와 같이 은행에서 돈빌리기가 힘들고 회사의 자금사정도 좋지 않을 때 큰힘이 될수 있다는 판단에서 은행에 들섰다. 그러나 막상 담당직원을 만나고 난 후 「차라리 오지 말걸」이라는 후회를 하게 됐다. 그직원은 『은행이 금리차를 통해 먹고사는데 꺾기가 없어지면 은행은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인가』라며 『위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실제로는 그게 씨알이나 먹히겠나』라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나」하는 기대가 「역시나」하는 후회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C이사는 『정부의 지원시책이 무엇하나 제대로 된것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시설구입과 신제품개발에 투자하기 바쁜데 은행예금이 어디 있겠습니까. 은행의 예대상계를 통해 대출금리 인하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우량기업에 한정된 얘기입니다』Y사의 K사장은 은감원의 발표가 「있는 기업」중심으로 짜여져 있으며 신규업체들은 자금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에 있는 벤처기업인 K기업은 최근 수출확대로 매출호조세를 타고 있어 거래은행과의 관계가 좋은 편이다. 거래은행이 조건부승인은행이 아닌 덕에 대출회수나 한도축소 요구가 없다. 그러나 최근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금융비용부담을 줄지 않고 있다. 이회사의 M부사장은 『비싼 이자때문에 대출을 조기상환하거나 예대상계를 하려 해도 이들 은행들이 중기대출실적 감소를 우려해 이를 거부하고 있어 불만이 높다』고 말했다. 【성장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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