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 25일 국회는 한산했다. 18대 국회의원이자 새누리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오 의원은 각각 충청과 부산으로 내려가고 없었다. 기자가 이날 오전 국회의원회관을 1층부터 8층까지 돌아봤지만 여야 의원 대부분은 자리를 비웠다. 19대 총선에서 패배한 의원실의 방은 아예 짐을 치우고 문을 잠가버렸다.
전날 여야는 본회의를 잡아놓고도 국회법 선진화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무산시켰다. '몸싸움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국회법은 물론 59건의 민생법안도 함께 사장된 것이다. 몸싸움 방지법은 18대 내내 폭력을 일삼던 여야가 지난 2월 '반성문' 삼아 합의했던 법안이다. 59건의 민생법안 역시 지난 3월 단지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가 모자라 다음 회의에 더 많은 의원이 모이면 의사봉을 두드리기로 여야가 약속한 사실이 의사록에 남아 있다.
새누리당은 총선 후 돌변했다. 의원 180명이 있어야 법안의 신속 처리가 가능해진 개정안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때문에 총선에서 과반이 넘는 152석을 획득한 새누리당이 자기 당에 불리한 법안 내용을 거부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박 위원장이 보완책의 필요를 거론했고 황우여 원내대표가 스스로 운영위에서 통과시킨 법안의 본회의 처리를 거부했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박심에 흔들린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새누리당은 여야의 합의 문화가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진화법'부터 도입하면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애초 여야 합의 과정에 반영했어야 했다. 합의해놓고 뒤집는 것은 오히려 의회주의 원칙을 깨뜨리는 행위다. 또 국회법은 어디까지나 큰 틀의 기준일 뿐 구체적인 적용은 여야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법보다 합의를 중시하는 것이 국회법 특유의 정신이다.
여야 대선주자는 지금 앞다퉈 민생행보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공약 실천을 중시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간파한 전략이다. 그러나 18대가 벌여놓은 공약도 다 챙기지 못하면서 새 약속을 실천하겠다는 대권주자와 당을 과연 어느 유권자가 믿을까. 지금 의원인 대권주자에 필요한 건 민생행보가 아니라 국회로 돌아오는 것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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