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오디세이'라는 책에 의하면 인류가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약 50만년 전 사냥을 하면서 의사소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으로 인류는 생존경쟁에서 매우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말에 의한 의사소통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첫째, 말은 하자마자 사라진다는 시간적 제약이 있다. 둘째, 말을 주고받는 당사자들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공간적 제약이 있다. 셋째, 말에 의해 교환되는 정보의 저장은 사람의 부정확한 기억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말에 의한 소통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기원전 3,000년경 그림문자 또는 상형문자와 같은 초기문자를 만들었다. 그 후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의 지혜가 더해져 말의 시간적·공간적 한계와 정보 저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오늘날의 문자로 발전했다. 문자의 발달로 인류는 후세에게 지적유산을 남길 수 있었고 과학기술과 학문 연구도 가능해졌다. 또한 문자를 이용한 교육으로 인류의 지적 수준도 크게 향상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문자의 중요성 때문에 모든 문명국가는 자국민들에게 자국 문자를 가르친다. 나 역시 학교에서 우리글인 한글을 배웠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글을 읽고 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자각하지 못했다. 내가 한글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얼마 전에 읽은 '한글의 탄생'이라는 책 때문이다. 이 책은 지난 2010년 일본인 노마 히데키가 일본어로 썼으며 말과 문자의 관계, 훈민정음이 탄생한 환경, 훈민정음의 원리와 의미, 한글의 우수성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 노마 히데키는 '한글의 탄생'으로 2010년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와 아시아 조사회가 시상하는 '아시아 태평양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 한글학회로부터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주시경학술상'을 수상했다.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 2011년 출판되었다.
저자는 놀랍게도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천여 년에 걸쳐 소중하게 간직해온 한자 시스템과 결별을 고했다고 하면서 "훈민정음의 창제와 발전은 동아시아에 있어 지(知)의 거대한 혁명이었다"고 적었다. 혁명은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없다. 훈민정음은 5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많은 반대와 저항 그리고 질시와 탄압을 극복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 문자인 한글로 발전했다. '한글의 탄생'을 읽으며 나는 한글의 우수성을 재인식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다. 또한 이러한 책이 외국인에 의해 써졌다는 데 아쉬움과 자괴감도 들었다.
내일은 훈민정음 반포를 경축하는 한글날이다. 제568돌 한글날을 맞아 나는 세종대왕과 함께 한글의 창제와 보급·발전을 위해 힘써온 수많은 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더불어 많은 한국인 특히 법률가·학자·작가·언론인,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 등과 같이 한글을 많이 사용하는 분들에게 '한글의 탄생' 일독을 권해드린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