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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20년 장기불황 그림자… 日 '노숙자 대국'으로

경기침체에 실업자 급증, 도쿄 노숙자만 1만명 넘어<br>소득 불균형 갈수록 심화, 1억 중산층 신화는 "옛말"

최근 비정규직 양산과 이로 인한 소득 양극화 심화에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길거리에 나앉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노숙자들이 한 시민단체가 제공한 무료 점심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자료사진



지난달 17일 일본 도쿄(東京)시 시바공원(芝公園).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을 맞아 도쿄의 한복판인 이 곳에서 작은 기념 행사가 열렸다. 단상에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실직해 노숙자로 전락한 50대, 닥치는 대로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40대 여성 등이 나와 자신들의 처한 실상을 절절히 토해냈다.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이 모여 그 소리를 경청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그 속에 가려진 빈곤층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는 자리였다. ◇'노숙자 천국'된 일본=일본을 처음 찾는 이방인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바로 청결한 거리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노숙자다. '일본=부자나라'라는 인식에 노숙자는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오래 전 노숙자 천국으로 변했다. 90년대 10년 장기 불황이 드리운 그림자다. 오사카, 도쿄 등 일본의 주요 대도시에서는 어렵잖게 노숙자들을 볼 수 있다. 이 들은 주로 공원이나 강변, 지하철역, 도로 등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 마나 돈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 하루 1,500엔 하는 24시간 인터넷 카페를 전전한다. 수치상으로 일본의 노숙자들은 해마다 줄고 있다. 지난 2008년 1월 공식 조사된 바에 따르면 일본의 노숙자는 1만6,018명. 공식적인 조사가 처음으로 이뤄진 지난 2001년 8월의 2만4,090명보다 8,000명 적고, 최고를 기록했던 2003년보다는 9,300명 줄어든 것이다. 이에 대해 후생노동성은 지난 2003년 제정된 '홈리스 자립지원법'에 따라 노숙자 쉼터확충, 민간단체 지원 등이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는 현실과는 동떨어졌다는 지적이다. 경기 침체로 실업자가 급증하는 상황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도쿄의 경우 올 1월 조사에서 노숙자 2,341명으로 조사돼 지난해보다 270명 줄었다. 그러나 민간기구에서는 도쿄의 노숙자만 1만 명이 넘는다고 추산하고 있다. 실제 노숙자에게만 판매권을 주는 시사잡지 '빅 이슈'(The Big Issue)를 배급하는 도쿄의 자원봉사자에 따르면 이 잡지를 받아간 노숙자들이 1만1,000명에 달한다. 이를 근거로 할 때 일본 전체로는 3만 명이 넘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노숙자 중에는 파견노동자, 기간노동자, 하청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이 많다. 실업자가 되는 순간, 이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저축해 놓은 얼마간의 돈마저 바닥나게 되면 노숙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실업수당 같은 사회안전망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데다 불황으로 재취업도 어렵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해고자 중 재취업한 이는 35.1%에 불과했다. 국제노동기구(ILO)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실업자의 77%가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무너진 1억 중산층, 이제는 '빈곤대국'=노숙자는 빈곤층 문제를 보여주는 일례일 뿐이다. 일본의 극빈자 층은 최근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지난 4월 현재 일본에서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된 세대 수는 120만3,874세대로 전달보다 3만1,129세대 증가했다. 대상자수도 166만4,892명에 달했다. 지난 95년의 88만 명에 비해서는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유례가 없는 가파른 증가세다. 아무리 일을 해도 빈곤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위 '워킹 푸어'(Working poor)도 1,000만명을 넘어섰다. 연간 100만 엔도 되지 않는 소득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이들은 자녀 교육 등 미래를 위한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고도성장기를 거쳐 일본은 80년대 1억 중산층을 이르는 '국민총 중류'(國民總中流) 신화를 만들어냈다. 전 세계는 일본에 부러운 시선을 보냈고, 각국은 앞다퉈 경제발전 모델로 채택했다. 하지만 90년대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근로자 세대의 실질 가처분 소득은 97년 월 49만7,000엔을 정점으로 2005년에는 44만 엔으로 감소했다. 1인당 소득 순위도 200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위에서 2006년 18위로 추락했다. 만성적인 저성장에 따른 것이지만, 전반적인 소득감소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다. 소득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지난 81년 0.3143에서 2002년 0.3812로 증가했다. 후생노동성이 지난달 20일 발표한 자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지난 2007년 일본의 상대적 빈곤율이 15.7%,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4번째로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인구 6.4명당 1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들 중 82.8%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OECD평균(62.8%)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워킹 푸어'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상대적 빈곤율은 연간 소득이 전체 인구의 가처분소득 중간값의 절반 이하인 경우를 말한다. 이처럼 소득 격차가 커진 것은 양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이 깊다. 비정규직은 평상시 임금에서 차별을 받을 뿐 아니라 경기가 나빠지면 우선적으로 해고되며, 해고 뒤에도 실업급여 등 사회 안전망에서도 소외된다. 최근 일본 내각부가 발간한 2009년 경제재정보고에 따르면 2009년 1분기 현재 비정규직은 1,699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33.4%를 기록했다. 지난 2002년 1,406만명(28.7%)에서 300만명이 늘어난 것이다. 비정규직은 임금에서도 차별받아 평생 정규직의 40%밖에 벌지 못해 그 격차는 무려 9,000만 엔에 달했다. 비정규직이 양산된 것은 사회 고령화 현상과 함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가 주도했던 노동시장 규제완화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2004년 '노동자 파견법'을 개정하면서 일부 업종에만 허용했던 파견직 근로자 채용이 전 업종으로 확대된 것이 주 원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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