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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품격을 높여라] 선진국 의회는 예절·규칙 지키며 논리로 풀어

美 등 의장 통해서만 상대방 질문… 충돌 예방<br>질서유지 위해 퇴장 명령·제명도 서슴지 않아


"질의 시간은 아수라장 같았지만 의장의 위엄이 가득 차 있었다. 불과 25분간이었지만 18명의 의원이 25개의 질문을 퍼부었고 수상은 즉석에서 이를 척척 받아 넘겼다. 점잖고 우아한 마거릿 대처 수상도 의회에서는 소리를 빽빽 지르는 어시장 아주머니 같았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 1987년 영국 의회를 참관하고 돌아와 쓴 소감이다. 그가 전한 대로 미국ㆍ영국ㆍ독일ㆍ프랑스 등 이른바 의회 민주주의를 먼저 도입한 선진국에서 의회는 논리의 싸움터다. 막말이 아닌 오로지 냉철한 논리만을 갖고 싸우기 위해 이들은 일반인보다 엄격한 예절과 규칙을 준수하며 이를 어기면 국회의원의 배지까지 떼어낸다.

영국은 공간 구성부터 폭력 국회를 방지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영국은 여야 의석 한가운데 통로를 놓고 완전히 갈라서 마주 보고 앉게 돼 있다. 그 통로의 폭은 양쪽 의원이 칼을 뽑아서 칼끝이 닿을락 말락 할 정도의 거리다. 19세기 이전 의원들이 걸핏하면 상대를 향해 칼을 뽑은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의원을 흥분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은 또 있다. 영국을 포함해 미국ㆍ프랑스 등 주요 의회는 직접 상대방을 부르지 않는 게 원칙이다. 반드시 의장을 통해 묻는다. "의장께서 총리의 의견을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을 지칭할 때도 이름을 부르거나 '너'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대신 '신사' '숙녀', 혹은 '00지역 출신의 존경하는 의원'이라고 예우한다. 지나치게 친밀한 토론이 발언예절 위반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회는 대통령을 견제하지만 대통령을 사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 미 하원의회 규칙에 따르면 '대통령의 메시지가 국가를 망신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은 거짓말쟁이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 행사는 비겁하다' '대통령은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금지된다.



영국 의회 역시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 일부까지 금지한다. 예를 들면 부정직(dishonest) 또는 '한 입으로 두말하기(duplicity)' 같은 말이 이에 해당한다.

발언의 표현뿐 아니라 내용 역시 규제한다. 여야가 합의한 의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내용을 확인하겠다면서 의원이 언론보도 등 외부 자료를 읽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한다. 우윤근 국회 법사위원장(민주통합당)은 "영국 의회를 탐방한 적이 있었는데 매주 총리가 의회와 나와 의원들과 진지하게 국정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의원들도 예의를 갖추되 정책적인 면에서는 비판의 칼날을 세우는 모습들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프랑스 의회는 의제 외에 발언을 하는 의원을 의장이 주의줄 수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의장은 의원의 발언을 금지시키고 회의록에 삭제를 명령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의회는 흔히 정해진 의제가 아닌 정치적 쟁점을 갑자기 거론하면서 회의가 소란해지고 결국 파행으로 이어진다. 다른 나라 역시 이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여야가 합의한 내용만 갖고 논의하는 것이다.

주요 국가는 이같이 세밀하고 엄격한 의회 규칙을 실제 회의마다 적용하기 위해 의장의 권한을 무겁게 인정한다. 법정의 판사처럼 의회는 의장이 의원의 모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의장의 권한이 가장 큰 독일의 경우 의장은 회의장에 소란행위를 벌인 의원에게 최대 30일간의 출석 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 그 밖에 영국ㆍ독일ㆍ일본 의회의 의장은 퇴장을 명령할 수 있으며 의원은 이에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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