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구이 요리의 재발견 재료 본연의 맛 드러내는 요리법구이의 핵심은 '즙' 유지하는 것 서은영 기자 supia927@sed.co.kr 그래픽=이근길기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ImageView('','GisaImgNum_2','default','260'); ImageView('','GisaImgNum_3','default','260'); #장면 1. 인간이 처음으로 불을 사용하게 된 기원전 50만년경. 아직 불에 서투른 인간의 실수로 한 부락을 끼고 있던 산에 갑자기 불이 났다. 뜨거운 불이 삽시간에 산을 뒤덮었고 인간은 불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하루를 넘게 타던 불이 차츰 사라지고 새까맣게 타버린 산만 남았다. 산에 오른 인간들은 검게 탄 짐승들을 발견하고는 짐승의 고기를 맛 봤다. 탄 고기에서 생고기일 때와는 다른 맛을 느낀 인간들은 이때부터 인위적으로 불을 지피고 고기를 태워 먹기 시작한다. 인류가 추정하는 '구이'의 발견 장면이다. #장면 2. 화력을 조절하는데 서툴렀던 인간들은 한동안 탄 고기만을 먹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인간은 적당히 구워진 고기를 맛볼 수 있게 됐고 적당히 익은 고기의 식감이 더욱 뛰어나다는 사실 그리고 탄 고기 보다 적당히 익은 고기가 익은 후 양이 덜 줄어든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결국 인간은 불을 지핀 후 어느 정도 화력이 약해진 뒤에 고기를 굽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 어떤 인간은 고기가 타지 않도록 나뭇잎에 싸서 굽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대로 고기에 불이 직접 닿지 않자 고기가 덜 탔고 수분 손실도 적었다. 용기의 발견에 인간이 좀더 근접하는 순간이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요리라는 구이. 요리는 못 해도 햄은 구울 줄 안다는 자취 초보부터 '계란 후라이'는 할 줄 안다는 예비 신부까지 다른 건 못해도 '굽기'는 웬만한 사람도 할 줄 안다. 한국인이 가장 자주 즐기는 외식도 삼겹살이나 등심 구이 등 주로 고기구이를 메뉴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간단하다는 매력 때문이다. 그뿐인가.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 저녁 밥상에 꼭 한 가지씩은 생선구이나 고기가 메인 반찬으로 오르는 것을 보면 한국인은 구이를 사랑하고 또 친숙하게 여기는 민족이다. 사실상 구이 요리의 일상화는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 어딜 가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구이요리 한 가지쯤은 그 나라의 전통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이요리가 간단할 뿐만 아니라 구이라는 조리 방식이 길고 긴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든 두 가지 장면처럼 인간은 불을 발견한 이후 우연히 구이 요리법을 알게 됐다. 재료를 불에 넣고 익혀 먹게 되자 이전보다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훨씬 많아졌고 음식 맛도 좋아졌다. 영양 상태도 더 좋아졌다. 상하기 쉬운 날음식을 덜 먹게 됐고 조리를 하면서 세균도 제거할 수 있었다. 간편하게 조리한 음식을 휴대할 수 있게 되면서 이동이 쉬워졌고 인간의 발육도 좋아졌다. 물론 구이를 즐겨 먹는 현대인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구이 요리를 하고 또 먹는다. 맛있는 음식 앞에 과학과 역사는 중요하지 않은 법이다. 가장 손쉬운 요리 속에 담겨진 미학은 인간의 재주가 최소한으로 가미된 자연의 맛이었다. 고기 맛 살리고 냄새 없애려면 숯불 화로구이가 최고 구이의 매력은 식재료 본연의 맛에 가장 가까운 음식을 조리된 형태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구이용 재료는 가장 좋은 품질만 엄선한 것들이다. 구이요리는 재료 자체의 맛을 그대로 드러내 품질이 떨어지면 손님들이 금방 알아채기 때문이다. ■ 구이, 요리의 시작 구이라는 조리법은 불의 사용과 더불어 시작됐다. 인간이 구이요리를 발견한 이후 용기의 사용을 터득하게 되면서 찜이나 탕, 삶는 방식의 요리법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학설이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전기 구석기 시대 후반 정도로 추정되는데 불의 사용으로 인간이 구이를 즐기게 되면서 생활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인류의 식문화 발달 과정을 인류학적으로 설명한 책 ‘음식의 역사(레이 태너힐 지음, 우물이 있는 집)’에 따르면 음식 조리에 불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인간은 이전에는 소화시킬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가열과정을 거치며 식재료의 섬유소가 분해되고 단백질과 당질이 용해되어 나오면서 영양가도 높아졌다. 그 결과 인간은 더욱 건강해지고 수명도 연장시킬 수 있었다. 이같은 과정을 두고 미국의 인류학자 칼터 쿤은 “요리법의 도입은 원초적 동물 상태의 인간을 보다 완전한 인간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초기 인간은 불에 직접 음식물을 넣어 구워먹었기 때문에 탄 음식을 주로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탄 음식을 멀리하게 됐을까. 적당히 구운 음식을 즐겨 먹게 된 것은 탄 음식에서 유해물질이 나온다는 지식보다는 식감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탄 음식의 인체 유해성을 알고 피했는데 동의보감에서도 탄 음식을 지속적으로 먹으면 인체에 해롭다고 설명하고 있다. ■ 숯의 향과 연탄의 저렴함 숯과 연탄, 가스불과 전기 구이 등 식재료를 어떻게 가열하고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구이의 종류는 십 여 가지가 넘는다. 이중 구이요리 전문가들이 가장 좋은 구이 방법이라 인정하는 것은 숯을 이용한 조리다. 특히 숯불을 이용하면 고기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데 숯이 돼지고기 등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고 특유의 향을 고기에 입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숯을 이용한 화로구이도 인기다. 숯과 도자기 화로, 석쇠를 이용해 고기를 굽는 화로구이는 원적외선을 통해 고기의 겉과 속을 동시에 익혀주는 게 특징이다. 연탄을 사용할 경우 연소과정에서 화학성분이 생기고 가스불은 열전달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는데 반해 화로구이는 유해물질 발생이 없는데다 고기를 빠르게 익혀 수분 손실도 적다. 비싼 숯을 대신해 대부분의 식당에서 사용하는 것이 칙화탄(압축탄)과 연탄이다. 생선구이, 장어구이 등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는 흔히 연탄을 사용하는데 연탄 특유의 서민적인 분위기 때문에 유해성분이 나올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연탄 역시 숯처럼 재료의 잡내를 없애지만 연기가 많이 난다는 점이 흠이다. 원통 모양의 기둥에 구멍이 나 있는 형태인 칙화탄은 숯 대용품으로 값이 싸지만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며 논란이 된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중 음식점들이 숯 대신 칙화탄을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리 달군 석쇠에 고기 구워야 표면 익으며 육즙 손실 최소화 ■ 즙을 다스리는 것이 핵심 불에 올려 굽기만 하면 되는 구이요리에도 비법은 있다. 구이 요리 전문가들이 말하는 구이의 핵심은 바로 “식재료의 즙을 다스리는 것.” 배한철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총주방장은 “구이요리를 입안에 넣었을 때 한 입 깨무는 순간 재료에 숨어있던 즙이 빠져나오며 입안에 깊은 향미를 줄 수 있어야 좋은 요리”라고 설명했다. 즙을 잃지 않으며 구이요리를 하는 비결은 간단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렵다.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는 방법이 미리 센 불로 달군 석쇠나 팬에 음식을 올리는 것이다. 석쇠나 팬을 미리 달군 다음 음식을 올려야 빠른 시간 안에 표면을 조여 즙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재료를 올릴 때는 판을 미리 달궈서 사용해놓고 판을 자주 교체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새로 올리는 판은 달궈진 것이 아니므로 그 위에 굽던 재료를 다시 올리게 되면 판이 달궈질 때까지 재료가 식게 돼 맛이 없어진다. 판을 자주 갈지 않으려면 재료를 적당 량만 올려 구워야 한다. 식감을 위해서도 재료를 적당 량만 올려 알맞은 정도로 구워졌을 때 바로 먹어야 맛있다. 고기를 구울 때 두 번 이상 뒤집지 않아야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정설이다. 자주 뒤집을수록 즙이 잘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센 불에 한 면을 익힌 다음 즙이 올라오기 시작할 때쯤 바로 뒤집어 표면을 조여주는 것이 고기구이의 핵심이다. 구이에서 즙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식감이다. 너무 많이 익히거나 덜 익히면 재료가 질겨 맛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고기의 경우 잘못된 방향으로 썰면 씹는 맛이 떨어져 먹을 수 없게 된다. 구이용 고기에 근육이 많이 들어갈 경우 고기가 질겨질 수 있으므로 근육은 직각으로 썰고 지방이 고루 분포 되도록 한다. 또 고기를 씹는 식감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은 굽기 직전 고기를 썰어 소금과 후추로 적당히 간을 한 후 바로 익혀 먹는다. 호주 그릴요리의 대가로 최근 인터컨티넨탈호텔 그릴요리 행사를 위해 방한한 크리스 테일러 주방장은 “식재료에 따라 특히 고기는 부위에 따라 구이 시간이 달라지며 구이 시간이 식감과 즙의 양을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크리스 주방장에 따르면 구이요리를 할 때는 식재료에 맞는 적합한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굽는 것이 중요하다. 또 갑각류(해산물)의 경우 고기보다 높은 온도에서 굽는 것이 좋다. 크리스 주방장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주장은 바로 고기에 휴식시간을 줘야한다는 것. 그는 그릴 요리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벤 숯의 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구이를 마친 후 손님에게 가져가기 전 몇 분간의 휴식시간을 줘야 그 사이 숯의 향이 고기 깊숙이 스며든다”고 설명했다. ▶▶▶ 관련기사 ◀◀◀ ▶ [리빙 앤 조이] 구이 요리의 재발견 ▶ [리빙 앤 조이] 세계의 구이요리 ▶ [리빙 앤 조이] 구이 골목의 재발견 ▶ [리빙 앤 조이] 한방칼럼-배앓이 자주하는 아이들의 속사정 ▶ [리빙 앤 조이] 사망요인 4위 자살 ▶ [리빙 앤 조이] '땅끝'은 해남여행의 시작일 뿐… ▶ [리빙 앤 조이] '세계로 울리는 명량의 북소리' ▶ [리빙 앤 조이] 캄보디아 시엠립-앙코르 유적과 주변 관광지 ▶ [리빙 앤 조이] 앙코르와트 명성에 가려진 수도 프놈펜 ▶ [리빙 앤 조이] 서비스드 아파트 아시아 2008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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