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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섭 전 한나라당 의원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1년 사법시험에 응시했다가 3차 면접시험에서 떨어졌다.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07년 정 전 의원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와 정부의 조치로 부당하게 잃었던 연수원 입소 자격을 되찾았다. 자식뻘인 44기 후배들과 2년간 연수원을 마친 정 전 의원은 올 초 법조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곳은 법무법인 광장의 입법컨설팅팀. 정 변호사는 올 초 연수원을 졸업할 당시 직접 광장에 입사를 제안했다.
정 변호사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입법활동을 펼쳤던 경험을 살려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을 받는 규제를 해소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었다"며 "기업자문 역량과 입법지원 활동에 대한 평가 등을 고려한 결과 수십 년 동안 간직한 법조인으로서의 꿈을 펼치기에 광장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출범한 입법컨설팅팀은 법무법인 광장의 신생팀이다. 정 변호사와 같은 다양한 경력의 법조인들이 모여 법령을 살피고 이를 기업과 국민의 수요에 맞게 해석하고 개정, 신설하도록 지원하는 게 주된 역할. 팀장을 맡고 있는 이종석 변호사는 "행정처분 등을 받은 뒤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며 "입법컨설팅팀은 사전에 올바른 방향으로 법령을 해석하고 규제를 손질해 기업이나 기관의 손실 가능성을 없애고 원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소개했다.
입법컨설팅팀은 입법분야에 경험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데 적극적이다. 입법지원 활동의 핵심이 전문성이라고 판단해서다. 국회의원 출신인 정 변호사 외에도 팀장인 이 변호사는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간사와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을 지냈다. 팀원인 홍승진 미국변호사는 행정고시(35회) 출신으로 법제처 대변인과 법제관을 거쳤다. 법제처에서만 18년 동안 근무한 만큼 규제대응 실무에 정통하다. 방송통신법 및 개인정보보호규제 전문가인 고환경 변호사(연수원 31기)도 팀의 주축이다.
국세청 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정부 내 조세 관련 실무를 경험한 류성현 변호사(연수원 33기)와 군법무관 출신인 최다미 변호사, 국토해양부와 국회의원 정책연구소 등을 거친 홍윤태 미국변호사도 입법컨설팅팀 소속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을 지낸 이종구 전 국회의원과 김석민 전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팀장은 "고위직을 통한 지시나 정치적인 압력으로 입법에 영향을 주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전문성을 갖추고 구체적인 논리를 제시하면서 정부행정이나 의원입법 과정에서 실무진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법률적 판단을 제시하는 게 광장 입법컨설팅팀의 설립 취지이자 활동 목표"라고 강조했다.
광장 입법지원팀이 이뤄낸 성과는 다양하다. 정보기술(IT)업체인 다음 커뮤니케이션이 제주도로 본사를 옮기려고 준비하던 2011년께 이야기다. 당시 다음은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상 '정보화촉진 기본법에 따른 정보통신과 관련된 산업'에 속하는 회사인 만큼 제주도로 이전하면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는 업종으로 분류돼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정보화촉진 기본법을 폐지하고 국가정보화기본법을 만들면서 감면 대상에서 제외되는 황당한 결과가 나왔다. 정부가 감면 대상을 특정하는 시행령을 '정보통신산업에 따른 통신산업'으로 변경한 게 화근이었다. 이 경우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업체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종의 입법 실수였다.
다음은 이러한 문제를 뒤늦게 발견하고 광장 입법컨설팅팀에 해결 방안을 자문했고, 팀은 시행령 개정방안을 만들어 건의했다. 정부에서도 의도치 않았던 상황이었던 만큼 2012년 2월 흔쾌히 관련 조항을 수정했다. 결국 다음은 2012년 본사를 제주도로 옮겼고 이후 해마다 100억원 이상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있다.
이 팀장은 광장 입법컨설팅팀이 잇달아 성과를 이끌어 내고 다른 법무법인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인으로 변호사들이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사내 문화를 꼽았다. 그는 "광장에는 비록 내가 수임했다 하더라도 사내에 나보다 해당 사건에 더 전문적인 변호사가 있다면 서로에게 넘겨주는 문화가 있다"며 "특정 사건에 가장 전문적인 변호사들이 다루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크다"고 전했다
아울러 광장이 수행하는 기업 자문의 수가 많다는 점도 입법지원팀으로서는 이점이다. 홍승진 미국변호사는 "입법지원은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분야"라며 "기업 자문 과정에서 입법 수요가 발굴되는데 광장은 수많은 국내외 기업을 자문하면서 입법 지원에 대한 경험과 해결 능력을 쌓았다"고 말했다. 광장은 국내 법무법인 가운데 기업 인수·합병(M&A) 자문 실적이 가장 많다.
입법컨설팅팀은 앞으로 입법 지원 활동이 법률 시장에서 점점 중요한 영역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팀장은 "연간 정부가 바꾸는 법이 3,000건에 이르는 만큼 수많은 법령이 바람직하게 변화하고 현실의 수요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입법컨설팅팀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민과 기업들이 법령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고충을 전할 수 있는 창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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