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의 비효율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핵심은 예산 대비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예산은 세계 1위지만 사업화 부문은 형편없을 정도다. 이를 고치기 위해 다양한 원인과 처방이 나오고 있고 미래창조과학부는 관계 부처와 협의해 조만간 'R&D 혁신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연구자들의 '그들만의 리그'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평가 시스템 개편 등이 핵심방안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국가 R&D 비효율성 이슈는 역대 정부에서 수차례 제기됐던 것. 그때마다 정부가 앞장서 대책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상태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린 R&D
그렇다면 이번에 나올 'R&D 혁신방안'은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또 한 번의 통과의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R&D 비효율성의 숨은 주범 가운데 하나가 '정부'인데 이 부문에서 제대로 된 개선안이 나오기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R&D 비효율성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고 있을까. 한 예로 민간 기업과 달리 국가 R&D에서 중요한 것은 연속성인데 그것을 어렵게 하는 것이 바로 정부다. 불과 몇 해 전으로 시계를 돌려봐도 드러난다. MB 정부 때 유행처럼 번졌던 것이 바로 녹색성장에 기반한 이른바 '그린 R&D'였다. 지난 2012년 정부의 R&D 지출에서 녹색 R&D가 차지하는 비중은 16%로 2007년(12.3%)보다 높아졌다. 출연연 조직도 그린 R&D로 바꿨고 모든 연구의 초점이 이곳에 맞춰졌다.
'그린 R&D'만 있었던 국가 연구개발은 이제 '창조 R&D'로 바뀌었다. 수많은 그린 R&D 프로젝트가 어떻게 됐는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린 R&D의 대부분은 예산이 줄고 사업이 중단됐거나 자취를 감추지 않았을까 싶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R&D 정책의 핵심기조가 바뀌니 이런 상황에서 프로젝트의 연속성이 보장될 수 있을까.
쉼 없이 바뀌는 R&D 컨트롤타워 조직도 정부발 R&D 비효율성의 원인이다. 굳이 사례를 안 들어도 노무현 정부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컨트롤타워 조직은 변신에 변신을 해왔다. 현재 R&D 컨트롤타워인 미래부 역시 차기 정권에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컨트롤타워 부재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나뉘고 쪼개지고 합쳐지다 보니 일선 출연연에서는 시어머니를 여럿 모시고 있다. 이합집산 과정에서 부처별로 R&D 권한이 조금씩 남아 있어서다. 미국·독일·프랑스 등에도 하나밖에 없는 국가 R&D 평가기관이 우리나라에는 13개 부처에 17개나 되는 것이 좋은 예다. 출연연은 눈치 볼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연구비 관리 규정만 무려 372개나 된다.
정부가 올해 초 3D 프린팅 산업 발전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주도권을 놓고 미래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주관은 미래부지만 산업부 역시 힘을 쓸 수 있는 파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컨트롤타워 구축은 다른 부처 입장에서는 자기 밥그릇을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R&D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들이 전문 관료에서 일반 행정 관료로 대거 바뀌었다.
미래부 존속 여부도 불투명
전문 관료들은 두터운 일반 관료들 사이에서 하나둘 옷을 벗었다. 심지어 전문성이 요구되는 출연연 원장으로 대선 때 도와준 인물을 임명한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선 현장 과학자들의 '과학자로서의 긍지'는 무참히 무너졌다. 출연연 원장도 부처 사무관을 대할 때 '대단한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
국가 R&D의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출연연도 바뀌어야 하고, 연구원들도 그렇다. 여기에 추가될 것이 있다. R&D 일선 현장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장본인 가운데 하나가 정부라는 점이다. 반성하고 크게 바뀌어야 할 것은 정부인데 이런 사실을 스스로 알면서도 애써 감추려 한다. 그러면 결과는 뻔하다.
/이종배 정보산업부장 ljb@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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