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자산 선호 및 안전자산 회피' 현상은 글로벌 금융시장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은 살아나는 글로벌 경기를 다시 위축시킬 수 있는 리스크 요인으로 꼽혔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고 난 후의 흐름은 정반대다. 시장은 테이퍼링 발표로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내년 초반까지 글로벌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특히 신흥국 화폐 등의 리스크 자산도 각광 받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위험자산 선호심리가 확산되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전세계 주식시장이다. 선진국 종합주가지수격인 MSCI월드인덱스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 결정이 나오기 직전인 지난 17일(현지시간) 이후 불과 7거래일 만에 3.39% 상승했다. 5월22일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 가능성을 처음 시사한 뒤 한달여 만에 7.8%가 빠진 것과 대조된다.
중동·동유럽·남미 등의 주가지수를 대표하는 MSCI프런티어마켓지수도 19일 591.24로 2년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는 소폭 하락했으나 여전히 테이퍼링 결정 이전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MSCI신흥국지수 역시 테이퍼링 결정 이후 오히려 상승하며 5월 이후 한달 만에 17.8% 급락했던 것과 정반대 양상을 보였다.
특히 2010년 유럽 재정위기의 핵으로 부상하며 최대 위험자산으로 꼽혀온 유럽 은행 관련 주식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STX유럽600지수 중 은행 관련 주식지수는 테이퍼링 결정 이후 7거래일 만에 약 5%에 상승했다. 재정위기 이후 3년간 은행권에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이외에도 테이퍼링에 따른 금리상승으로 전세계 채권시장이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리스크는 크지만 높은 이윤을 주는 정크본드 시장은 호황을 맞는 이례적인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달러 표시 정크본드(투자부적격 등급 회사채)지수와 유로표시 정크본드지수는 25일과 26일 각각 147.472와 150.485로 지수 출범(2010년 1월)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심지어 신흥국 정크본드지수 역시 테이퍼링 결정 이후 오히려 상승하며 5월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반면 안전자산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의 10년물 국채금리는 테이퍼링 소식이 전해지기 전인 18일 0.651%였지만 27일에는 장중 0.703%까지 상승(국채가격 하락)했다. 독일의 10년물 국채금리 역시 17일 1.825%에서 26일 1.887%까지 올라갔다. 스위스 10년물 국채금리도 17일 0.975%에서 26일 1.04%로 두달 만에 1%대에 진입했다.
소시에테제네랄의 베노이트 안 신흥국 투자전략부문장은 "당초 테이퍼링은 리스크오프(안전자산으로 자금을 이동시키는 것)를 촉발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시장은 반대를 택했다"며 "이는 중대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또 그는 "이르면 1월부터 위험자산이 상승 랠리를 보이고 심지어 인도 루피화 등 신흥국 위험자산도 각광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로이터는 신흥시장에서 지난 여름처럼 자금이 대거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월가에 지배적이라고 보도했다. 핌코의 토머스 크레신 유럽 환시장책임자는 "고양이(테이퍼링)가 가방에서 나왔기 때문에 시장의 불확실성이 많이 해소됐다"며 "투자자들이 (유망 신흥국의) 매력적인 자산가치와 상대적인 고금리 등 더 견고한 투자 펀더멘털을 주목하면서 신흥시장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런 위험자산 선호심리가 글로벌 경제에 또 다른 충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연준이 장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경제지표 호조에 따라 시중금리가 연준의 통제를 벗어나 급격히 상승한다면 위험자산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독립 신용평가사인 라피드레이팅의 제임스 켈럿 최고경영자(CEO)는 "(정크본드) 발행회사들이 도미노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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