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 주최로 '2011년 터놓고 이야기하기' 워크숍이 열린 여의도 금감원 대강당. 단상 앞에 설치된 대형 걸개그림에 '금융기관'이라는 표기가 공식 등장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ㆍ보험사 등을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회사'로 칭하도록 무던히 애를 썼던 것과는 반대다. 10여년 만에 감독정책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신호였다. 그래서인지 이날 참석자들은 걸개그림을 유심히 쳐다봤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걸개그림에 금융기관이라는 표기를 봤는데 감독당국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매우 생소했다"면서 "모종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금융계 최고경영자(CEO)가 한결같이 올해는 수익이 나빠질 것으로 내다보는 배경에는 점차 강화되고 있는 규제 리스크와 무관하지 않다. 금융당국이 대출금리나 연체금리 인하 압박, 대손충당금 적립 강화에서부터 바젤Ⅲ 도입에 따른 경영건전성 지표 등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해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한 은행장은 "실물위기로 기업들의 도산이나 경영환경이 나빠져 가뜩이나 은행 영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규제 리스크마저 더 거세져 쉽지 않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에 대비, 포트폴리오의 다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강화되는 규제…금융계, 도전에 직면하다=금융계 전반에 대한 규제 강도가 세진다. 은행ㆍ카드 등이 주된 규제의 대상이다. 가계부채도 관리하고 소비자ㆍ중소기업ㆍ서민을 보호한다는 논리가 앞서고 있어서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당국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법 체계나 정책을 강화해 예금 및 대출 이자율, 연체 수수료 등에 대한 규제를 옥죈다. 특히 신용카드업은 수수료 인하 압력과 카드발급 억제, 대체결제수단(직불ㆍ체크ㆍ선불카드 등)이 복병이다.
이뿐만 아니라 여신금융사의 레버리지 비율을 10배 이내로 제한하는 법률도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가맹점 수수료 경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중소가맹점 범위를 연 매출 1억2,000만원 미만에서 1억5,000만원 미만으로 확대했으며 전체 가맹점 수수료 체계를 다시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수익성 악화가 뒤따르고 있고 그 충격은 이미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가 최근 발표한 1월 여신금융사 경기실사지수(BSI)는 61로 지난해 12월(116)보다 45포인트나 떨어져 거의 반토막 났다. 수익성 BSI 전망도 전달(89)보다 15포인트 떨어져 체감경기가 악화됐음을 보여줬다.
은행업도 대출 연체이자율을 내리고 연체이자율 하한선을 폐지했고 예금담보대출의 가산금리 인하 및 연체이자도 없어졌다. 예금 이외의 채무에도 지급준비율 부과가 가능해지는 은행법 개정안도 지난해 8월 통과됐다.
이와 반대로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에 대한 규제는 올해 완화되는 추세다. 앞서 지난해에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헤지펀드 가입자격 및 운영규제, 금전차입 한도, 파생상품 거래 등에 대한 규제가 다소 누그러졌다.
올해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 개념이 등장해 관련 영업범위가 넓어지고 대체거래 시스템 및 장외파생상품 청산소 등과 같은 자본시장 인프라가 보강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학자금펀드 도입이 의원 입법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중산층펀드 등의 도입,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에 대한 위험투자 관련 규제완화 등 펀드 관련 규제도 완화된다.
◇규제 리스크 극복해야 성장 토대 갖춰=시중은행의 한 은행장은 현 시점을 진검승부를 펼쳐야 할 때라고 규정했다. 밋밋하게 대응했다가는 글로벌 경쟁은 차치하더라도 국내에서의 경쟁에서도 밀릴 수 있다는 얘기다. 경기침체기에 규제 리스크까지 겹쳐 그만큼 사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졌고 1~2년이 지난 뒤 성패는 명확하게 갈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검승부를 펼칠 만큼 위기감을 느끼지만 뒤집어보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어려운 현실을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보는 시각에는 김태준 금융연구원장도 공감한다. 김 원장은 "거시경제의 불확실성과 규제 강화 움직임, 공공성 요구 증대와 같은 변수들은 단기적으로 금융회사들의 성장을 저해하고 수익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러한 요인들이 악재가 아닌 호재, 금융산업 선진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금융산업에 대한 규율과 금융소비자 보호가 강화되면 비용 상승이 필연적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금융회사의 생산성이나 효율성이 높아지고 경영 인프라가 개선돼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커진다는 논리다. 김 원장은 "여기에다 해외진출이나 우수인력 확보, 나아가 해외 선진 금융회사 인수합병(M&A)에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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