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수능 시험이 끝난 지도 보름정도가 지났다. 몇몇은 곧 치를 논술 준비에 한창이고, 어떤 이는 대학 배치표가 너덜거리도록 꼼꼼히 살피지만, 사실 훨씬 많은 아이들은 갑자기 붙은 ‘어른’이라는 딱지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3일 개봉작 ‘발레교습소’(감독 변영주ㆍ제작 좋은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그렇다. 딱히 공부를 잘 하지도 못하는 데다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잘 모르겠다.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뭐 이렇게 되는 일이 없냐”며 푸념하는,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연말 고3’ 아이들이다. 영화는 ‘그저 그런’ 청춘들이 겪을 법한 일상사들을 늘어놓는다. 민재(윤계상)은 항공대에 진학해 비행기 기장이 되길 원하는 아버지 뜻에 맞춰주기엔 수능 점수가 택도 없다. 사실 비행기 따위엔 별 관심도 없다. 옆집 동갑내기 수진(김민정)을 좋아하지만 고백할 용기가 없다. 수진이도 별 수 없다. 제주대 수의학과에 진학하길 원하지만 강아지도 무서워하는 그녀가 그 곳에 가려는 이유는 그저 집에서 독립하고 싶어서다.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던 아이들은 우연히 동네 구립회관에서 열리는 발레 강습에 참여한다. 언뜻 일본 영화 ‘쉘 위 댄스?’가 떠오르는 부분. 그들이 춤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내용 역시 ‘쉘 위…’와 엇비슷하다. 다만 ‘쉘 위…’가 춤에 많은 비중을 두면서 등장인물들이 춤 자체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찾는다면, ‘발레교습소’에서 춤은 잠깐의 즐거운 ‘축제’일 뿐. ‘발레’로 한 판 멋진 굿을 벌린 청춘들은 다시 무기력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다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극에 담아내려다 보니 정작 그들의 현실에는 깊게 다가가지 못한 채 산만함이 느껴진다. 다가올 시간이 두렵기만 한 아이들은 죽은 엄마를 못 잊고, 길거리에서 뜬금없이 불량배에게 얻어터진다. 말끔한 극영화로 좋을 얘기를 다큐멘터리로 풀어낸 느낌. 그래도 수능이 끝난 수험생들에겐 괜찮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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