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MH17편) 사건을 계기로 서방국가들의 러시아 제재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러시아 경제가 출렁거리고 있다. 모스크바 증시는 큰 폭으로 떨어졌고 러시아 국채 및 루블화 가치 역시 하락한 반면 신용부도스와프(CDS) 는 치솟았다. 러시아 경제의 주역인 올리가르히(신흥재벌)들은 자신들에게 미칠 악영향에 긴장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러시아 금융시장은 여객기 격추의 여파로 대(對)러시아 추가 제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일제히 하락했다. 모스크바 증시의 RTS지수는 이날 2.91%나 떨어진 1,239.13으로 마감했다. 달러화로 거래되는 RTS 지수는 연초 대비 12%나 하락했다. MSCI 신흥국지수가 같은 기간 6% 상승하는 등 신흥국 증시 전반의 상승세와는 대조적이다. 루블화로 표시되는 MICEX지수도 이날 러시아의 크림자치공화국 병합 이래 가장 큰 낙폭인 2.67% 하락한 1,384.50을 기록했다. 이날 러시아의 대표적 에너지 기업인 가스프롬 주가는 2.3% 하락했고 로스네프트 주가도 최근 3일간 2.5% 내려갔다.
오는 2027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이날 19bp(1bp는 0.01%포인트) 상승(국채 가격 하락)한 9.23%를 기록했다. 시장분석 기관 마킷에 따르면 러시아 채권의 부도 가능성을 나타내는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도 이날 15bp 오른 223bp를 기록했다.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 가치도 이날 0.2% 하락하며 달러당 35.20루블에 거래됐다. 루블화는 올 들어 6.1% 떨어지며 주요 신흥국 중 디폴트 위기의 아르헨티나(21.3% 하락)를 제외하고 가장 약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4~18일 러시아에 투자했던 상장지수펀드(ETF)에서 2,854만달러가 빠져나갔다고 보도하는 등 투자자 불안에 따른 자본유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에릭 드포이 가스프롬뱅크 전략가는 "투자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여객기 격추로 가뜩이나 나쁜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가브리엘 보렌스타인 엔클레이브캐피털 관리 책임자도 "추가 제재가 나오면 러시아 경제가 크게 힘이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러 제재 기류가 짙어지면서 올리가르히들도 앞으로 미칠 악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 방송 CNBC는 "올리가르히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고르 부닌 러시아 정치공학센터장은 "러시아의 재계 지도자들은 모두 공포에 떨고 있다"며 "다만 조금이라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 정부가 응징할 것이라는 걱정에 조용히 있을 뿐"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러시아의 정치 분석가인 올가 크리슈타노프스카야도 "러시아의 경제 엘리트들은 전쟁의 공포 속에 있으며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에 추가 제재가 부과된다면 목표물은 가스프롬 등 주요 에너지 대기업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라 우려의 정도는 더 크다. 미하일 카시야노프 전 총리는 "경제계 전반에 제재에 따른 우려가 넓게 퍼져 있다. 특히 금융 분야 전반에 제재가 시행되면 6개월 내로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CNBC는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올리가르히들이 올 상반기에만도 750억달러를 해외 계좌로 옮기는 등 재산 대부분을 제재가 미치지 않는 국외로 이전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와 연관되지 않은 주요 부호들은 제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작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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