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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역사를 그리는 리얼리즘의 연금술사

서양화가 서용선<br>인물·전쟁·신화 등 강렬한 메시지 전달<br>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예술 프로젝트 참가<br>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전시 중


서용선 작가가 베를린장벽 붕괴 20주년 프로젝트에 출품한 작품. 분단국가의 현실을 보여주는 군인 이미지를 담았다.

'정선군' (위) '계유년' (아래)

서양화가 서용선(58)은 역사를 그린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인물ㆍ풍경ㆍ역사ㆍ전쟁ㆍ신화 등 다양하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 중에서도 역사 속의 의미심장한 사건들을 다룬 작품에는 확고한 서용선 특유의 분위기가 드러난다. 조선 6대왕으로 삼촌에 의해 죽임을 당한 비극의 주인공 단종(端宗)를 주제로 한 역사화 연작은 그를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2009년 '올해의 작가'에 올려 놨고, 역사에 대한 그의 오랜 관심은 오는 11월에는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또다른 인연으로 이어진다. ◇ 장벽을 무너뜨려라=서용선 작가는 몇 달 전 독일 정부로부터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위한 작품 제작을 의뢰받았다. 높이 250㎝, 가로 120㎝, 두께 40㎝의 강화 스티로폼 패널에 '장벽 붕괴'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오는 11월 9일 20주년 기념일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 이렇게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에게서 받은 1,000개의 패널 작품을 줄지어 세워놓고 연달아 쓰러뜨리는 '도미노 이벤트'를 하겠다는 게 독일 정부가 계획한 시나리오다. 서 작가는 독일에 보내는 작품에 특유의 강한 필선으로 철조망 안에서 초소를 지키는 남한과 북한의 군인을 패널 앞뒤로 그렸다. "국경을 지키는 군인이에요. 분단국가의 경계선에 서 있는 군인은 서로를 지켜보는 '감시의 눈'과 같은 존재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이들은 첨예한 상황에 날을 세운 '말초신경'과 같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그 날(11월9일) 패널을 쓰러뜨리는 과정은 곧 감시의 눈이 없어지는 현장이며 분단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번 '베를린 프로젝트'에는 우리나라 같은 분단국 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벽'이 존재하는 국가의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한국 대표로는 화가 서용선 외에 소설가 황석영과 조각가 안규철이 함께 한다. 18일까지는 후암동 주한 독일문화원에서 실제 작품을 볼 수 있으며 이후 독일로 옮겨 포츠담 광장과 독일연방의회 등지에서 전시된다. ◇ 스스로 경계를 허물다=서용선의 그림은 비슷한 연배의 동시대 작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서 작가가 화단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1970년대. 선배들은 모노크롬화(흑색ㆍ백색 등 한 색으로만 그리는 단색화)를 중심으로 한 추상미술이 아니면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민족기록화로 크게 구분됐다. 그가 한 쪽 편에 서지 않고 자신만의 '서용선표' 화풍을 찾아내기까지의 선택과 고민은 어쩌면 스스로 경계를 허물고 뛰어넘으려는 무의식의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서용선은 미니멀리즘으로 전개되는 현대미술과 사회참여와 현실주의를 내세운 민중미술의 성격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의 작품세계는 종종 '신표현주의'와 비교되곤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 화풍 역시 냉전시대의 산물인 미국의 추상미술과 소련의 리얼리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굵은 필선의 묘사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기운생동한다. '눈을 놀라게 하는' 강렬한 색조를 선택하는 작가는 "조선시대부터 색채 사용이 억제되어온 영향인지 현대미술에도 그 같은 감각과 편향이 은연중에 깔려 있는 것 같다"며 "우리 원형의 색을 찾아 색채 문화를 새로이 일으키기 위해서라도 기존 색채관념의 파괴가 필요했기에 빨강ㆍ녹색 같은 원색 두 세가지를 용감하게 칠했다"고 말했다. 색이 과감해질수록 형태는 간결해진다. 그의 전시를 기획한 김경운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작가 서용선은 천진난만해 보일 정도로 형태를 아주 투박하게 묘사하는데 이런 양식적 특징 속에 드리워진 강렬한 색채는 표현력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작품의 내용면에서는 '역사'가 주축을 이룬다. "그리스 조각이나 르네상스 회화 같은 유럽의 미술에는 역사적 사건과 비극의 드라마가 담겨 있어요. 그런데 한국 미술에는 왜 그런 작품이 없을까요. 강원도 영월 강가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다 단종의 유배 현장이라는 청령포로 들어가는 길목을 봤습니다. 거기서 내가 바라던 소재, 즉 한국적인 비극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소재를 찾아냈습니다. 이게 시작이었는데 20여년째 아직도 단종의 비극을 그리고 있네요." ◇ 자연으로 돌아가자=서용선은 종종 자화상을 그리곤 한다. 과천 전시장에 걸려있는 붉은 눈의 대형 자화상은 작가 자신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평가를 얻는다. 멋부리지 않는 소탈함과 의지에 찬 강인함이 공존한다. "커다랗고 붉은 눈이 인상적인지 관객들이 '분노를 뜻하냐'고 묻기도 하더군요. 붉은 색의 부릅뜬 눈은 작가로서의 열정과 꺼지지 않는 호기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서 작가는 23년간 몸담았던 서울대 교수직을 지난해 8월 과감히 떨치고 나왔다. 좋은 작가가 되고자 했던 꿈에서 멀어질까 조바심이 난 때문이라고 한다. "교수 자리를 버린 것에 후회하지 않느냐"는 물음을 수도 없이 받았지만 그럴 때 마다 그는 "예전에 미처 몰랐던 산과 들판이 내 인생 속으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온 것 같고 작품만 열심히 할 수 있어 좋다"고 답한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가 역사와 전쟁, 신화와 도시인들을 주제로 한 대작들이라 다소 묵직한 느낌인데 반해 그의 풍경화에서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작가의 이면을 볼 수 있다. 삼청동 리씨갤러리에서는 그의 신작 풍경화만을 선보이는 '산(山)수(水)'전이 10월 10일까지 열린다. 교편을 놓은 그가 지난 2년간 다닌 지리산과 강원도 태백ㆍ정선, 중국의 돈황산 가는 길 등지의 풍광은 선명한 붓질과 강렬한 색채로 어우러졌다. 동양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폴 세잔느의 '생 빅투아르 산' 같은 작가만의 독특한 해석 방식도 느껴진다. 깊이를 잃은 채 겉멋만 도는 유희가 각광받는 현대미술의 난세(亂世)에, 주제에 관한 인문학적 연구와 성찰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서용선의 진정성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주 진지하면서도 산뜻하게. 사족 하나. 서용선은 1978년 국전에서 소나무 그림으로 상을 받았다. '소나무의 작가'로 유명한 사진작가 배병우는 "소나무를 그리는 화가로는 서용선이 으뜸"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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