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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스피드 퀴즈부터 풀어보자. '방망이와 공을 합친 가격은 1달러 10센트. 방망이의 가격이 공보다 1달러 더 비싸다. 그렇다면 공의 가격은 얼마일까?'
재빠르게 10센트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틀렸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시라. 미국 대학생의 20%, 하바드와 MITㆍ프린스턴 재학생들의 절반만이 정답(5센트)를 맞췄을 뿐이다. 사람들은 왜 틀렸을까. 직관 때문이다. 정답을 찾아낸 사람들은 스피드퀴즈라는 압박에서도 10센트라는 직관을 거부하거나 피해갔다.
신간 '생각에 대한 생각'은 이런 실험 사례들이 무수히 나온다.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할 판사나 환자의 건강, 나아가 생명까지 다뤄야 할 임상의사들도 성급한 판단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패의 원인은 앞의 사례와 동일하다. 이성보다는 직관에 따랐던 탓이다. 저자 대니얼 카너먼은 의사결정 인자를 두 개로 나눈다. 빠른 직관으로 구성된 시스템 1과 정확하지만 느리고 게으른 이성이 지배하는 시스템 2가 우리의 두뇌 속에서 상호 작용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시스템 2의 영향 속에 있기를 바라겠지만 실제는 그 반대다. 카너먼은 시스템 1, 즉 직관이 인간의 판단과 생활을 지배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단언한다. 주식투자도 여기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매도ㆍ매수 결정과 성과를 분석해보니 일반투자자들은 물론이고 펀드매니저들조차 '직관에 의존하는 주사위 게임'처럼 투자해왔다는 결과가 나왔다.
답은 없을까.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즉 시스템 1과 2의 조화를 위해 카너먼은 '무의식적 패턴 인식을 끊임없이 연마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경제학자들은 심리학자인 카너먼의 실험과 결론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본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라는 경제학의 기본전제를 뒤엎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경제학에는 달갑지 않지만 카너먼의 사고와 실험은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이후 '행동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행동경제학을 개척한 87세의 대학자인 카너먼의 첫 대중교양서인 이 책은 미국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CEO등 유력독자들이 꼽은 '2011년 베스트셀러'의 수위를 기록했다. 개인의 선택에서 정책, 교육과 국방ㆍ의료ㆍ회사경영ㆍ주식투자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소개되는 실험 사례는 다양한 직업군의 독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학부모들도 눈여겨 볼만 하다. '억지로 뭔가를 하도록 자신을 독려해야 한다면, 다음 도전에서 자제력을 잃거나 대응 능력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을 자아고갈이라고 한다. 자아고갈은 포기하려는 충동에 더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저미었다./권홍우 편집위원 hongw@sed.co.kr
행동경제학 개척 노벨상 수상… 세계 100대 사상가에 다니엘 커너먼(Daniel Kahneman)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34년 텔아비브 출생으로 헤브루대학을 나와 육군 장교로 일선복무를 거쳐 심리전부대에 근무한 뒤 유학 길에 올라 카나다와 미국에서 강단에 섰으나 1979년 아모스 트버스키와 공동으로'전망이론'을 발표하며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키는 순간까지도 영어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짧은 영어와 차별을 딛고 연구에 매달려 이스라엘 육군 시절부터 동료장교였던 아모스(1996년 사망)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꼽혔던 그는 2002년 수상 이후 더욱 각광받으며 '세계 100대 사상가'(미국 잡지 포린 폴리시), '세계금융을 움직이는 50대 인물'(블룸버그)에 꼽혔다. 틈날 때마다 이스라엘의 행정 교육 개혁과 군 인력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해 '이스라엘 역사상 200대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자 중 경제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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