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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안 되기’

한국인에게 두 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통일`과 `선진국`을 들 것이다.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로 인해 가슴 절절한 소원이 되어 있지만, 고난의 근세사를 되돌아보면 `선진국 염원` 또한 절절하기는 통일에 못지않다 할 것이다. “당신은 왜 일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에선 통일보다 선진국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국 일본 보다 선진국 그런데 정부는 이 같은 국민 정서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남들이 모두 `한국은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한국정부만 `개도국`이라고 우기고 있다. 한국도 회원국인 선진국클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1년 6월과 2002년 9월 두차례에 걸쳐 선진국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첫번째 보고서는 최빈국을 제외한 67개국을, 두번째 보고서는 OECD회원국을 포함한 125개국을 각각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중ㆍ장기에 걸쳐 각국의 1인당 소득, 무역비중, 국내총생산, 2ㆍ3차 산업비중, GDP대비 교역비중, 정치적 안정성, 언론자유, 정부의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3개의 시나리오별로 순위를 매기는 작업이었는데 한국은 모든 시나리오에서 공히 선진국으로 평가됐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한국이 일본보다 앞섰고 하나의 시나리오에선 미국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는 것이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1,2위를 차지하고, 호주ㆍ뉴질랜드가 개도국으로 분류되었는가 하면, 말레이시아가 우리보다 2개에서 앞서는 등 상식을 벗어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한국의 선진국지위에는 변함이 없었다. OECD의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지난 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주동이 돼 선진국 순위매김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OECD의 1차보고서 때부터 반대운동을 펴온 한국은 WTO까지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면 큰일이라고 판단,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각종 OECD 회의에 참석해 반대입장을 밝히고, 사무총장에게 항의서한을 띄웠다. 한국은 OECD의 순위매김이 전체 회원국의 합의 없이 진행된다는 점, 개도국의 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점, 무역 등 특정분야에 대한 가중치를 높이면 결과가 왜곡된다는 점 등을 반대 논거로 제시했다. OECD는 한국의 반대입장을 일부 수용, 순위매김은 하지 않고, 조사결과도 발표하지 않으며, 2003~2004년에 걸쳐 추진키로 한 3단계작업을 중단키로 했다. 30개 OECD회원국 중 한국의 반대운동에 동참한 것은 멕시코 뿐이었다. 그러나 선진국 명단에 오르지 못한 멕시코의 반대 입장이 한국과 똑같을 수는 없었다. 한국의 `선진국 안되기` 캠페인은 순전히 도하개발아젠다(DDA) 때문이다. WTO체제의 새로운 무역규범을 정하는 DDA협상에서 우리가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매우 불리해 질 우려가 있다. 특히 농업협상에선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선진국민, 선진국상품 대접을 받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경제력이나 문화역량에서 우리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선진국에는 그에 걸맞는 의무가 부여된다. 그 의무는 비용의 증대로 직결된다. 비용을 치르고 기분을 낼 것이냐, 기분은 언짢지만 실리를 택할 것이냐의 선택인 셈이다. 양자 택일을 할 경우 아직은 후자 쪽이 낫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마음가짐은 선진국민처럼 선진국이냐 개도국이냐는 해당국가가 스스로 선언할 수 있으나 그 선언이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WTO는 정의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개도국 선언을해서 실속은 차리고, 마음가짐만은 선진국민처럼 하면 좋겠다. 그러나 OECD 회원국 가운데 선진국 거부증세를 갖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 뿐이다. `선진국 안되기`도 쉽지 않다는 게 한국 정부의 고민이다. <논설위원 imj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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