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금융권이 처한 현실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돈 버는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남의 것을 빼앗지 못할 경우 생존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답답한 것은 이 같은 생각이 너무 근시안적이라는 데 있다. 당장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길게 보면 답은 달라진다. 건전하지 못하거나 핵심 역량이 부족한 곳은 영원히 도태될 수밖에 없어서다. 현재 금융권은 겉으로는 금융위기의 불씨가 제거된 것 같이 보이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9월 미국발 위기 이후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금융권의 부실채권은 31조원으로 6개월 만에 10조원 정도 늘어났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구조조정과 금융권의 부실정리가 본격 시작되면 부실채권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건전성이 이처럼 위협 받고 있는 것은 정말 심각한 일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당장 살기에만 급급할 것인가. 금융권이 당면한 과제는 곪아가고 있는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다. 금융업체의 부실로 인해 신용위기가 촉발되면 그것이 다름 아닌 금융위기다. 금융권은 지금 당장 부실채권의 규모를 철저히 파악하고 깨끗이 정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핵심 역량 강화·차별화 힘써야
이익 창출 능력을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최근 금융연구원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국내 은행의 이익 창출 능력 지표인 핵심 이익률(이자수익+수수료수익/총자산)은 2004년 2.71%에서 2005년 2.55%, 2006년 2.36%, 2007년 2.30%, 2008년 2.07%로 4년째 하락하고 있다. 은행뿐 아니라 다른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익 창출 능력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렇게 된 요인은 수수료 이익이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데다 신성장동력 찾기를 게을리한 탓이다. 진단이 나왔으면 처방은 명확하다. 금융권이 서둘러야 할 것은 건전성 확보화 함께 각자의 핵심 역량을 강화하고 차별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함께 관계금융, 컨설팅, 교차판매 등 비교우위 분야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 그래야만 금융권의 아킬레스건인 건전성 악화와 쏠림 현상을 막으면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앞뒤가 있다. 영속적으로 살아남는 길이 건전성 확보와 안정적인 이익창출능력을 갖추는 것이라면 이를 위해 당장 필요하지 않은 다른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독서망양의 우를 범하지 않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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