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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6월 1일] 한국의 발전경험을 전수하자

이경태(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오늘부터 이틀간 제주도에서 한ㆍ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린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세안 국가들과 정상회의를 해온 반면에 한국은 이번에 처음으로 별도의 한ㆍ아세안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아세안 10개국은 중국ㆍ유럽연합(EU)에 이어 우리나라의 세번째 수출 상대이고 흑자 규모 역시 중국ㆍEU에 이어 세번째이며 해외투자(신고기준)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다. 여기에 더해 천연가스를 비롯, 자연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자원외교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정상회의에 참석차 방한하는 아세안 정상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눈부신 발전경험을 배우고 자국에 응용해 제2ㆍ제3의 한국이 되고 싶다는 속내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필자가 참석한 적이 있는 해외공관장회의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중남미ㆍ아프리카ㆍ아세안 지역의 공관장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자료요청을 자주 받는데 내용이 충실한 영문자료를 신속히 입수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열심히 찾아보면 개도국들이 쓸모 있게 이용할 수 있는 자료들이 꽤 있어 이것들을 일괄해 복사본을 만들어 개도국주재 공관에 비치해놓고 요청 받는 즉시 전달하도록 건의한 기억도 있다. 정부예산으로 개도국 공무원들을 초청해 우리나라의 발전경험을 공유하는 훈련프로그램이 국책연구소와 대학에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온전히 강의자들의 개인적 견해로 채워지기 때문에 객관성이 결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박정희 시대의 정부 주도 경제개발은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하고 부실기업을 양산해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일방적으로 매도, 듣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현재 미국발 세계경제위기는 우리의 개발지식 공유사업을 개선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를 모든 개도국들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불만들은 이미 있었으나 그동안 선진국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도 주주이익을 최우선시하고 금융기관의 공익성을 부정하며 금융기관들이 기업에 대한 자금중개 기능보다는 유가증권투자와 타금융기관에 대한 대출로 돈을 벌려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드세지고 있다. 또 국내 자본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한 동유럽 국가들이 외환위기의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단기자본의 자유화는 신중히 추진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제너럴모터스(GM) 등 ‘빅3’가 파산하도록 방임하지 않고 우선 구제금융으로 일단 목숨을 부지시킨 후에 자구계획을 제출 받고 이를 심사해 회생 가능한 부문은 살린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데 이는 과거 일본이나 한국에서 했던 정부주도의 기업 구조조정과 매우 유사하다. 또 각국 정부의 경기부양 예산 중에서 20% 정도는 녹색산업 지원에 할당되고 있는 것 역시 과거 일본과 한국의 유망산업 육성 정신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 1993년 동아시아의 기적을 다룬 보고서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고도성장과정에서의 정부 역할을 과소평가한 바 있고 한국의 경제발전모형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용도 폐기됐다. 그러나 이제는 재조명되고 재평가 받을 시기가 됐다고 적었다. 우리는 과거의 한국형 경제발전모형이 세계화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의 개도국들에 어느 정도 적용 가능한가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심화해나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개도국들이 처한 특수한 여건을 감안했을 때 구체적인 응용방법이 무엇인지 실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적절한 국책 연구소 내에 경제발전연구센터를 설립, 개발경제학연구의 세계적 중심기관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또한 개도국 공무원연수도 분야별로 전문기관을 지정,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지식 전수가 이뤄 지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정책형성에 직접 참여한 고위 공무원들과 학자들이 개도국에 머물면서 조언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한국은 개도국 원조에서 물량으로는 일본과 중국의 적수가 못 된다. 그러나 개도국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개발지식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있으므로 그들에게 고기 잡는 방법을 전수하면 훨씬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이 빈곤퇴치라는 지구적 과제해결에 기여하고 국가브랜드를 개선하며 우리의 소프트파워를 키울 수 있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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