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고와 은폐는 그동안 무수히 강조됐음에도 원전 안전관리 시스템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중차대한 사고도 사고지만 이를 감춘 행위가 무엇보다 놀랍다.
드러난 경위가 아리송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리원전 측은 한 지방의원에게서 사고 여부에 대한 확인요청이 들어와 그제서야 상급기관에 사고 사실을 보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안전관리 매뉴얼을 누구보다 잘 숙지하고 있는 현장기술진이 자기들 차원에서 은폐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원전 책임자와 상급기관도 진작에 보고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의심이 그래서 나온다. 이번 사례를 보면 과거에도 비슷한 사고와 은폐들이 없었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소속 감독관 여러 명이 현장에 주재하고도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 또한 미스터리이고 정말로 몰랐다면 눈뜬 장님 같은 감독관들을 비싼 인건비 들여 왜 거기에 보내는지 알 수가 없다. 원전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안전 불감증이 실망스럽다.
이번 사고와 은폐는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자초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원전강국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악수다. 우라늄농축과 재처리 등 원자력 보폭을 넓히기 위한 우리나라의 대미협상에도 찬물을 끼얹을 일이다. 국내에서는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는 원전반대 캠페인에 좋은 빌미를 줬다.
해외에 원전을 수출한다고 자랑하는 나라가 정작 집안에 구멍이 뻥 뚫려 있다. 은폐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해야 한다.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같은 노후원전의 수명연장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국민의 원전 불신을 가라앉힐 대책들을 강구해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