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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일자리 기업 뛰는데 법제정 표류] 연내 법안 발의도 힘들어 산업현장 혼란 확산

정부초안 단시간근로자 보호법과 차이 없어<br>본격 도입 한달여 앞두고 원점서 논의할 판<br>승진·전일제전환 가이드라인 마련 서둘러야

8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열린 제4차 일·가정 양립을 위한 일자리 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노사정위원회



올해 전일제 근로자와 근로조건에 있어 차별이 없는 이른바 시간선택제 근로자 100여명을 뽑은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자 K씨는 최근 인력 운용을 놓고 고민이 생겼다. 몇몇 시간제 근로자들이 '승진에 차별을 두지 말라'며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시간제 근로자가 관리직을 맡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관리직으로의 승진은 전일제만 허용한다는 방침이지만 시간제 근로자들은 '전일제와 차별이 없다는 시간선택제의 취지와 다르지 않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K씨는 "좋은 취지로 도입한 시간제인데 벌써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나와 당황스럽다"며"정부가 근로자의 승진이나 전일제 전환 문제 등에 있어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핵심 과제로 꼽고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의 본격적인 도입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에 발맞춰 시간제의 근로조건, 전일제로의 전환 문제 등을 명시한 시간제법안이 마련되지 않아 산업 현장에서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1일 고용노동부와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안에 '시간선택제 근로자 보호 및 고용촉진에 관한 법'의 국회 통과는 물론이고 발의조차도 힘든 상황이다.

고용부는 빠른 법 시행을 위해 의원 입법 형태로 법을 마련하되 제정 작업은 이 의원실과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 의원실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최근 고용부가 제시한 법 초안은 기존에 있던 단시간근로자 보호법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정도로 허술해 원점부터 다시 논의해야 할 상황"이라며 "생각보다 법 제정 작업이 어려워 올해는 물론 언제 법이 마련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시간선택제는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할 것, 같은 일을 하는 전일제 근로자와 임금ㆍ승진ㆍ4대보험ㆍ복리후생 등 근로조건에서 차별이 없을 것 등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이런 엄격한 조건 때문에 차별금지 원칙과 보호 수준을 법으로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아울러 법은 시간제 근로자가 전일제로 전환을 요구할 경우, 시간제 근로에서 초과근로가 발생할 경우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담아낼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올해 안에 법을 마련해 시간선택제가 차질 없이 안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틀어지면서 당장 내년부터 쏟아질 시간선택제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진 것이다.

가장 민감한 부분은 시간선택제 근로자의 '전일제 전환 청구권' 문제다. 기획재정부의 내년도 공공기관 채용계획을 보면 많은 공공기관들이 청년들을 시간제로 신규 채용할 계획인 가운데 청년 구직자들은 시간제로 뽑히면 전일제로 전환을 요구할 것이라는 여론이 비등한 상태다(서울경제신문 9월 12일자 참조). 시간선택제가 근로자의 자발적인 선택을 전제로 하는 만큼 전일제로의 전환 선택도 보장해줘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시간제 근로자를 제한 없이 전일제로 바꿔주면 비용이 급증하고 시간제 채용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전일제 전환 청구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가이드라인이 없을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간에 비례해 근로조건을 보호한다는 원칙도 자세한 기준이 없으면 두고두고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정부는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ㆍ승진ㆍ복리후생 등을 근무시간에 비례해 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비례원칙을 적용하기 애매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승진 문제의 경우 "전일제의 절반만 일한다고 똑같은 승진 과정이 2배가 걸린다면 불합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시간선택제를 운영하고 있는 한 대기업은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승진에 차별을 두지 말라고 요구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밝혔다. 교통비, 자녀 대학 등록금, 주택자금 대출지원금 등 시간에 비례해 기계적으로 쪼개기 어려운 복리후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외에 6시간 일하는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초과근로를 해서 8시간 일할 경우 통상근로의 1.5배인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하느냐는 문제도 있다. 8시간 일하는 전일제 근로자가 보기에 똑같은 시간 일했는데 시간제 근로자보다 돈을 더 적게 받는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간제 법의 공백으로 시간제 근로자의 불만이 쌓일 경우 시간제 정책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며 "시간선택제 운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하루빨리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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