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인문학과 관련해서 한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행동하는 지식을 위해서다. 인문학은 결국 인간과 사회와 삶에 대한 해석학인데, 이를 소생시키고 부흥하는 데는 책읽기 이상 가는 게 없다. 한국의 도서출판량은 엄청나서 자칫 통계로만 보면 한국이 인문학의 대국인 듯싶다. 그러나 출판된 도서의 압도적 다수가 오락성 만화와 학생들의 입시참고서라는 사실을 알면 한국인의 독서에 숨어 있는 비인문학적 성질이 금방 드러난다. 요즘 스마트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이 궁색한 초상은 더욱 심해졌다. 책읽기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문화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격을 끌어올리는 일은 무망하다.
한때, 꽤 오랜 한때, 선비문화를 지향했던 한국인들이 오늘처럼 책을 멀리하게 되면서 국민성도 함께 타락했다. 은근과 끈기, 품격과 예의, 배려와 질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으로 여겨질 만큼 우리의 가치체계는 천박해졌다. 경제규모에 비해 한국이 문화적으로 차별 받는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문학의 생산과 소비가 모두 문제인 것이다. 출판만 해도 그렇다. 많은 경우 내용은 빈약한 데 포장이 너무 화려하다. 누구나 쉽게 책을 내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빈약한 내용을 화려한 분장으로 은폐하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책이 너무 무겁다. 인문학이 발달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령 이웃 일본만 해도, 책의 무게가 우리보다 훨씬 가볍다. 한국의 출판업계가 너무 고급한 종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고급한 종이란 화학적으로 더 많이 처리된 종이를 말한다. 환경적으로도 대단히 유해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페이지 수에 따라 가격을 산정하는 한심한 정책이 또 인쇄된 지면의 여백을 더욱 확장한다. 이래서 한국의 책들은 이중으로 무겁도록 돼 있다. 들고 다니기가 어려워 책과 더 소원해진다.
좋은 책을 많이 출판에 널리 읽히는 것이 국가적 과제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우리네 정치도 지금처럼 비겁하고 야비하고 무식하고 파렴치한 데서 탈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국민의 행복지수도 점차 상향될 수 있지 않을까. 지식산업인 출판업계여, 책의 물리적 무게를 줄이고 정신적 무게를 늘려서 새로운 호황을 창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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