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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금융인들, 제대로 된 승부 한번 해봐라


한 금융당국자가 전한 대형 시중은행의 얘기는 한숨이 절로 나오게 한다. 이 은행은 STX와 모뉴엘 등으로부터 연타석 부실의 유탄을 맞았다. 그런데 이유가 한심하다. 처음에는 가만히 있다가 다른 은행들이 대출해줬다는 말을 듣고 뒤늦게 뛰어들었다 혼쭐이 났다. 당연히 제대로 된 심사과정은 없었다. "다른 은행이 돈을 넣었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말이 가장 중요한 심사기준이었다. 금융의 기본인 위험관리 시스템을 대형 시중은행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금융권은 더욱 한심하다. 저금리는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적자 원인으로 내세우는 단골 메뉴가 됐다. 금리가 낮을수록 자산운용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외환위기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해외의 값싼 자산운용사를 단 한 곳도 인수하지 못했다.

이러니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나오고 '쏠림병'이 우리 금융산업의 부실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지난 수년 동안 금융 CEO들은 이렇게 해도 괜찮았다. "우리가 제대로 못해도 쟤(다른 지주)들이 워낙 엉망이니…"라는 한 은행장의 말이 차라리 솔직하다. KB는 지배구조 싸움에 멍들고, 하나는 통합 문제에 정신 팔리고, 우리는 민영화에 치이고, 그러니 신한이 독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이 못하는 것에 서로 위안을 받는 구조다.

금융계 CEO 대폭 변동·IT금융 신호탄

전형적인 하향 평준화다. 이러니 동남아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굴욕적인 평가를 받고 '금융 후진국'이라는 말을 듣고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한가한 경영'은 용납될 수 없을 듯하다.



금융 CEO들이 새롭게 바뀌고 진검승부를 할 토양이 만들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까지의 경영방식을 유지하다가는 낙오하기 십상인 환경이다.

'사고 뱅크'라는 비아냥을 들어온 KB는 윤종규 회장 내정자가 정해진 후 빠르게 전열을 수습하는 모습이다. 두고 봐야겠지만 윤 내정자는 계열사 전반의 인사와 관행에 상당한 수술을 가할 듯하다. 작고한 김정태 전 행장의 삼고초려로 KB에 몸담은 윤 내정자는 누구보다 KB의 장점과 조직혁신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간만에 '진정한 선수'가 수장에 올랐다는 뜻이다. 우리은행도 마찬가지다. 한두 달이면 민영화 결과가 나온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도, 그렇지 못해도 새로운 출발점에서 공격적 경영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 이순우 행장 특유의 마당발 근성은 민영화 작업이 이뤄지는 와중에도 우리은행을 선두권으로 유지해왔다. 하나금융 역시 외환은행과의 조기 통합이 이뤄지면 무서운 상승 흐름이 예상된다. 연말 취임 2년 차를 맞는 권선주 기업은행장 역시 자신만의 색깔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씨티는 어떤가. 전임 하영구 은행장의 14년 체제를 뒤로 하고 자리를 물려받은 박진회 신임 행장이 뭔가를 보여줄 기세다. 경남은행과 광주은행을 각각 인수한 성세환 BS금융지주 회장 겸 부산은행장과 김한 JB금융지주 회장 겸 광주은행장의 칼날도 날카롭다. 박인규 대구은행장 역시 우리아비바생명을 손에 넣으며 공격 경영의 고삐를 죄고 있다. 2금융권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은행 인수를 추진 중인 교보생명은 물론이고 김창수 사장 체제의 삼성생명과 김연배 부회장 체제의 한화생명도 고삐를 죄고 있다. 최윤 아프로서비스 회장과 일본계 J트러스트는 저축은행에 이어 2금융권 매물들을 포식하면서 무섭게 세를 확장하고 있고 웰컴 등 대부업체들의 성장 속도 또한 가파르다.

맘껏 경쟁할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금융환경의 변화는 더욱 무섭다. 11일 출시되는 뱅크월렛카카오는 '정보기술(IT) 금융'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다.

이처럼 승부의 장은 화려하게 열려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당국의 역할이다. 선수들이 뛸 수 있도록 마당을 깔아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금융당국자들이 과거의 틀에 매달려 있다고 한다. 젊은 관료들이 더욱 그렇다. 자신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보신행정일 수도 있다. 선수의 경기 흐름을 심판이 깨서는 안 된다. 웬만하면 '옐로카드'를 꺼내지 말고 맘껏 경쟁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진정 자질 있는 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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