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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근본주의, 남 얘기 아니다


지난 1980년대 김홍신 작가가 쓴 소설 '인간시장'은 사회적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당시 엄혹한 독재정권하에서 숨을 죽여야만 했던 보통사람들은 주인공 장총찬이 해결사로 나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부조리를 척결할 때마다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옴니버스 식으로 이어진 숱한 에피소드 속에서 장총찬은 매번 악을 응징하지만 지금 기억에 딱 한번 실패한다. 사이비 종교집단과의 싸움이었다.

밤새워 책을 읽던 그때는 작가에게 왜 하필 거기서만 그런 아쉬운 결말을 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지금은 물어보지 않아도 이유를 안다. 어떤 믿음이 체화해 신념으로 굳어졌을 때 그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이비 종교집단은 근거 없는 믿음이 신념으로 굳어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며칠 전 전남 보성의 목사 부모가 삼남매를 굶기고 매질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목사 부모는 자녀들이 감기에 걸리자 "몸에 잡귀가 붙어있으니 몰아내야 한다"며 병원 치료 대신 밥을 주지 않고 매를 들었다.

비뚤어진 종교관이 낳은 비극

이들은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마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히브리어로 지옥)에서 구원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잠언 23장13~14절)을 따랐다. 이들은 '유대인들에게 40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고린도후서 11장24절)'라는 구절대로 39대씩 아이들을 때렸다. 아이들은 숨졌다.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엽기 신앙', '비뚤어진 종교관'이 낳은 비극이라며 안타까워한다. 극히 일부 몰지각한 신앙인들의 일탈 행위라는 시각을 보인다. 다시 생각해보자.

보성 목사 부모는 자식들을 미워한 것이 아니다. 더욱이 자식들을 살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부모들처럼 누구보다 자기 자식들을 사랑했을 것이다. 사랑한 방법이 잘못됐을 뿐이다.

그들이 자식들을 사랑한 방법은 성경 구절에서 나왔다.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게 이런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엽기 신앙이 아니라 문자주의 신앙이요 비뚤어진 종교관이 아니라 문자주의 종교관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된다.



문자주의는 경전의 내용을 씌어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문자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 신앙인들도 아니고 잡범 수준의 몰지각한 일탈 행위를 일삼는 신앙인들도 아니다. 그들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의미 있는 숫자를 형성하고 있으며 대개 속세의 그 누구보다 도덕을 강조한다.

이들이 경전의 구절을 씌어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자유일 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렇게 받아들여 체화한 신념을 외부로 발산할 때다. 이 때는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장총찬도 대적하지 못했다.

문자주의는 근본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근본주의는 대개 자신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비난하고 공격하는 자세를 보인다. 지난 2001년 9월11일 발생한 '9ㆍ11테러'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저지른 만행이다. 이들은 순교를 하면 천국에 가서 72명의 처녀들로부터 시중을 받을 것이라는 코란의 오역을 그대로 믿고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근본주의자가 경전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고 실천에 옮길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제대로 경험했다.

숱한 테러·만행들 대비해야

그동안 전세계적으로 광신도라고 불리는 근본주의자들이 벌인 숱한 테러와 만행들을 보면서 우리는 남의 일로만 치부했다. 이제 우리의 일로 받아들이고 대비를 해야 된다.

지난해 문경 십자가 사건이 있었다. 자신을 재림 예수로 여긴 한 신앙인이 부활할 것을 믿고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숨졌다. 지난해에는 한 개인의 불행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한 가정의 비극으로 커졌다. 다음에는 우리 사회를 뒤흔들 악행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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