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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허울 좋은 기름값 정책

“정부에서 만든 알뜰주유소가 가짜 석유를 파는 마당에 누굴 믿을 수 있겠어요.”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만난 운전자는 알뜰주유소에 대해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지방의 한 알뜰주유소가 가짜 석유를 판매하다 적발됐기 때문. 치솟는 기름값을 잡겠다며 지난해 말 정부가 야심차게 도입한 알뜰주유소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땅바닥에 떨어진 셈이다.

지난달 말 석유관리원에 적발된 순천의 한 알뜰주유소는 같은 시내에 운영 중인 다른 알뜰주유소 중에서도 가장 기름값이 싼 곳이었다. 하지만 저렴한 기름값의 비밀이 난방용 등유와 시너 등을 섞어 만든 가짜 경유였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소비자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더욱이 가짜 석유를 판 곳이 다름아닌 정부가 만든 알뜰주유소였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실망과 배신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체면을 구긴 지식경제부는 지난 4일 부랴부랴 강화된 가짜 석유 근절대책을 내놓았다. 가짜 석유를 판매하다 적발될 경우 즉시 주유소 등록을 취소하고, 같은 장소에서 2년간 영업을 못하게 하는 등 처벌 강도가 이전보다 세졌다. 과징금 역시 두 배씩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발표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뒷북 대책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알뜰주유소의 가짜 석유 판매는 사실 정부가 방조한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경부는 지난 2월 알뜰주유소 가입요건에 포함돼 있던 ‘품질보증 프로그램(매월 1회 불시검사를 통해 품질인증마크를 받는 제도) 가입 의무화 조건’을 없애고 개별 주유소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보다 많은 주유소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안된 정부의 안일한 정책은 ‘공신력 추락’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정부는 지난달 추가로 내놓은 기름값 대책에서 알뜰주유소에 각종 세금감면과 시설비용 지원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올해 알뜰주유소 확대계획을 당초 700곳에서 1,000개로 늘려 잡았다. 지경부는 이번 인센티브를 따져봤을 때 연간 390억원 정도의 세제 혜택이 주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알뜰주유소는 도입단계부터 실효성을 두고 말이 많았던 정책이다. 알뜰주유소가 시장의 우려를 딛고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숫자 늘리기에 급급할 게 아니라 지속적인 사후 검증 프로그램과 같은 세심한 대책들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매년 390억원의 혈세를 쏟아붓는 또 하나의 전시 행정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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