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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隔靴搔痒

이현우 <논설위원>

임기의 반환점을 돈 오늘 청와대와 여당의 심경은 어떨까. 답답함을 넘어 속이 시커멓게 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식물대통령이 되고 싶은 심정’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그 편린이리라. 국정의 최고책임자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게 민망하지만 한편으로는 오죽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왜 안 그렇겠는가. 반칙과 특권이 통하지 않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 모두가 잘살고 세계 속에 당당한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힘을 다해 뛰고 있는데 진심이 안 통하니 말이다. 수도이전, 외교안보, 개혁입법, 그리고 최근의 연정과 선거제도 개편, 국가범죄의 시효배제 제안에 이르기까지 참여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하는 일마다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뚫는 것처럼 힘들기만 했다. 정부·국민간 코드 불일치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이 사사건건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언론의 의도적 정권폄훼와 왜곡보도 탓도 안 빠진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야당의 발목잡기가 사실이라 치자. 그들이 그렇게 하는 데는 뭔가 믿는 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무기는 바로 여론이다. 국민이 대통령과 여당 편이라면 사사건건 야당이 날을 세워 딴지를 걸기란 불가능하다. 그런 정당은 존립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여론을 외면ㆍ왜곡하는 신문은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없고 결국 설 땅이 없어진다. 그런데도 여론을 거스르며 마구잡이로 정부를 ‘조져댈 수’ 있겠는가. 국민들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린 이유는 간단하다. 격화소양(隔靴搔痒)식 국정운영 때문이다. 발이 가려운데 신을 신고 긁거나 팔을 긁으면 아무리 열심히 긁어봐야 시원할 리 없다. 오히려 가려움증만 더해 차라리 긁지 않는 것만 못하다. 지금 정부와 국민들간의 인식차가 딱 이 모양이다. 코드가 맞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으뜸가는 관심사는 경제다. 반면 대통령은 다른 쪽에 더 신경을 쓰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물론 정치개혁, 균형발전, 남북관계, 자주외교, 과거사 청산 등도 중요한 과제다. 다만 국민들은 경제회생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국민들이 답답하고 섭섭할 것이다. 먹고사는 게 중요하지만 경제가 잘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가 제대로 서야 하고 이를 위해 노력을 하는데 국민이 몰라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지를 못 받아서 섭섭하고 억울하다’ ‘정치혁신 없이는 선진경제를 이룰 수 없다’ ‘그 어느 것보다 경제를 챙기고 있다’는 말에는 이런 감정이 짙게 묻어난다. 그렇다고 국민들을 탓해서는 안되며 무지몽매하다고 여겨서는 더욱 안된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 하지 않는가. 해법은 역시 경제다. 이와 관련, 고(故)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국민 평가는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일보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해방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자 가장 잘한 대통령으로 압도적으로 꼽혔다. 그는 장기집권 독재자요, 인권탄압의 주인공 아닌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 정부 들어 박정희 격하운동이 거세다. 그의 과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인물로 더욱 각인되고 있으니 기막힐 노릇이다. 바로 경제 때문이다. 경제 회복이 유일한 해법 결국 ‘박정희 망령’을 극복하는 길은 그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보다 경제를 더 일궈놓는 것이다. 이게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이 성공하고 국민이 행복해지는 길이다. 독재자도 인물로 평가되는데 민주적 리더십의 노 대통령이 경제를 회생시킨다면 찬사가 얼마나 쏟아질지는 긴 말이 필요 없다. 경제를 살리려면 가슴으로는 아래와 과거를 뜨겁게 품되, 머리와 눈은 냉철하게 위와 미래를 향해야 한다. 또 말을 많이 하기보다 많이 듣는 것도 필요하다. 청와대와 여당은 “좋은 정치는 국민의 목소리와 요구를 잘 들어주는 것”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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