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냐 유죄냐, 재판부가 결정한 한 마디에 자신의 미래가 바뀔 수 있는 형사법정의 피고인들은 자신을 대신해 검사와 싸워줄 수 있는 변호사를 고르는 데 신중을 기하기 마련이다. 거액의 변호사 선임료를 감당할 수 있는 재력가나 수십 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 오너라면 심혈을 기울여 최선책을 선택하려 한다.
형사사건에 연루된 재벌가에서 '러브콜'을 외치는 변호사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이 찾는 변호사는 형사재판에 매우 능숙해야 할 뿐 아니라 기업의 기밀도 철저하게 보안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관예우를 규제하는 여러 법안이 시행된 후 갓 개업한 고위 판검사들이 보유했던 장점이 사라지면서 재벌 총수들은 형사 사건에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던 스타 변호사들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최태원 SK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의 법정, 두 곳에서 모두 만날 수 있는 민병훈(51·사법연수원 16기) 변호사는 재벌 총수들의 끊이지 않는 러브콜로 유명한 인물이다. 최근 김승연 회장이 법정 구속되기 전까지는 '불패신화'로 불릴 정도로 굵직한 법정공방에서 승리를 거둬 왔다. 막힘 없는 변론, 정교한 논리로 정평이 나있는 민 변호사는 2009년 법관직에서 물러났으며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민병훈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형사사건뿐 아니라 현대건설을 두고 현대그룹과 채권단 사이에 벌어진 소송도 맡아왔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최찬묵(51ㆍ15기) 변호사도 기업 오너 관련 재판을 많이 수임하는 변호사 중 하나다.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 부부장검사와 법무부 검찰국 과장,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총무부장 등을 역임한 최 변호사는 2004년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비자금 조성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당시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을 위해 법정에 섰다. 최 변호사는 현재 피고인 신문을 앞두고 있는 'SK 비자금 의혹' 변호인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최 변호사와 함께 박용성 전 회장을 대변했던 오세헌(53ㆍ14기) 변호사는 김승연 회장이 지난 2007년 '보복폭행' 논란에 휩싸여 재판에 넘겨졌을 때 변호를 담당했다. 오 변호사는 20년간의 공직생활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으로 마무리하며 지난 2004년 김앤장으로 이직했다.
기업 오너들의 방패로 이름을 날리던 법률가가 전문경영인이 된 경우도 있다. 검찰 출신인 조준형(52ㆍ19기)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의혹에 대한 특검수사가 진행될 때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삼성그룹을 방어했다. 경영권 불법승계,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회장을 대리해 변호에 나서기도 했다. 조 부사장은 '대북송금 의혹'사건 수사 당시 고 정몽헌 전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변호인으로 활약했으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김승연 회장 등 대기업 전현직 오너들의 재판에도 관여했다. 기업 오너들과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던 조 부사장은 김앤장을 나온 2009년 특허와 실용신안, 저작권 등 각종 지적재산권 분야에 강점을 지닌 리인터내셔널 특허법률사무소로 자리를 옮겼으며 지난해 5월에는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의 법률 보좌역으로 뽑혀 삼성의 일원이 됐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