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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찾습니다, 대통령의 7번째 공약

소리 없이 사라진 비정규직 대책

청년들 저질 일자리로 내몰고 이젠 창업시장까지 뒤흔들어




퇴근해 도착한 집에 오랜만에 가을 하늘만큼이나 청명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책연구소에서 비정규직으로 1년 넘게 있었던 한 후배가 정규직으로 뽑혔다는 것이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과연 정규직이었다. 일단 대접이 달라졌다고 한다. 통장에 찍히는 월급액수가 커진 것은 기본이요 책상과 의자가 교체되고 새 컴퓨터가 들어오더니 필기구까지 바뀌었다. 그런데 정작 후배는 그리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사무실에 정규직은 저 혼자뿐이에요. 팀장도 제 선임도 모두 비정규직이에요. 너무 불편해요." 한 지붕 밑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괴로운 동거였다.

우리는 알든 모르든 항상 비정규직과 함께하고 있다. 굳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이 2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톱5'에 속해 있고 회원국 평균(11.1%)보다 두 배나 높다는 수치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거의 매일 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외식할 때 만나는 직원도 모두 정규직이 아니다. 대학생들은 '비정규직이 청소하는 학교에 등교해 비정규직이 밥하는 식당에서 식사하고 비정규직 교수(시간강사)들에게 교육받고 결국 졸업하면 다시 비정규직이 되는 세상'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그들이 요즘 소리 소문 없이 우리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집 일곱 번째 항목에 당당히 올라와 있건만 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전에도 이랬던 것은 아니다. 2013년 초까지만 해도 비정규직 대책이 없는 노동개혁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제 막 권력을 장악한 정권의 최고 책임자가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약발은 반년도 채 못 갔다. 어느 틈엔가 비정규직 대책 대신 슬그머니 '번듯한 시간제'라는 게 끼어들었다. '번듯하다'는 뜻과 '시간제 일자리'라는 단어가 모순된다는 사실은 정책 담당자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에 이르러서는 아예 노동시장 개혁으로 모습을 바꿨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당장 투자를 해야 할 기업이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로 죽을 판인데 어떻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으니 달래야 하지 않겠나. 정부로서는 대통령 공약사항인 고용률 70%를 맞추기 위해 시간제와 아르바이트라도 동원해야 했다. 노동시장 개혁을 해야 하는데 비정규직 문제까지 겹치면 문제가 더 꼬일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정부의 비정규직 해소 의지가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누구라도 나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고 국민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한번 잘못 꼬인 실타래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비정규직에 대한 애매한 태도는 청년에게 질 낮은 일자리를 줘도 모두 인정해주겠다는 신호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아니 적어도 기업들은 그렇게 해석했을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보다 훨씬 적게 받는 비정규직을 누가 마다하랴. 그러니 대기업에서 경쟁적으로 내놓았던 청년 채용 방안에 정규직 대신 '번듯한' 시간제와 인턴 인력 채용이 훨씬 더 많을 수밖에. 협력사를 통해 고용 확대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만한 능력을 가진 곳이 몇 곳이나 될지도 궁금하다. 지난달 임시·일용근로자 수가 1년 전보다 2만명 이상 늘어난 게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취업 전선에서 내몰린 청년들이 할 수 있는 대안은 하나뿐이다.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 요즘 '치킨집 아빠'만큼 많은 게 '카페 청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라진 비정규직 대책이 청년 실업은 물론 창업 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로부터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더는 불신 받는 정책을 보고 싶지 않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2013년 세법 파동과 올 초 연말정산 혼란으로 충분하다. 제발 사라진 대통령의 일곱 번째 공약을 국민에게 돌려다오.

/송영규 논설위원 sk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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